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공직(公直), 호는 괴암(乖庵), 영천(永川) 대전리(大田里)에서 출생. 아버지는 종사랑(從仕郞) 이개신(李介臣)이며 어머니는 월성이씨(月城李氏) 봉사(奉事) 이연(李璉)의 딸이다. 이숙량(李叔樑)의 문인이다.
17세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영천에서 의병을 모아 적과 싸워 영천성(永川城)을 수호하였다. 그 후에 청송(靑松) 안덕리(安德里)로 이사하여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더욱 힘쓰며 조형도(趙亨道)·권익(權翊) 등과 학문을 토론하기도 했다.
40세인 1615년(광해군 7)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더 과거에 응하지 않고 다음 해 다시 고향 대전리로 돌아갔다. 1627(인조 5) 북쪽 오랑캐가 침입하자 군사를 모아 싸우러 가려고 하였으나 강화가 성립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중지하고, 하양(河陽) 임호(臨湖)로 이사하였다. 하양(河陽) 임호사(臨湖祠)에 봉향되었다. 저서로는 『괴암일고(乖庵逸稿)』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