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경박(景博), 호는 소화(小華). 증조는 이재(李縡)이며, 아버지는 호조참판 이채(李采)이다.
1801년(순조 1)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807년 식년문과에 별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1809년에 천거로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와 예문관검열이 되고, 이어 전라감사 등 내외직을 두루 거쳐 벼슬이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일찍이 전라감사로 있을 때는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리자 기민들을 요령 있게 잘 구호하였고, 백성에게 농사를 장려하고 선비에게 책읽기를 권장하는 것이 지방관의 상례를 훨씬 뛰어넘는 바가 있었다.
타고난 성품이 화평하고 후덕하며, 자세와 태도가 장중하여 말과 웃음이 적었다. 입으로는 돈을 말하지 않고, 재물은 의례가 아닌 것은 받지 않았으며, 연경(燕京)에 두번이나 다녀왔건만 값진 물건은 하나도 가져온 것이 없었다.
벼슬이 판서에 이르러서도 생활은 지극히 검소하여, 의복과 음식이 가난한 선비와 다를 바 없었다. 평생 물건을 놓고 남과 다툰 일이 없었으므로, 비록 높은 지위에 올라도 사람들이 시기하지 않았으며, 세상살이에 결점이 없어 탁연히 한 시대의 완벽한 인물이 되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