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경연(景淵), 호는 남계(南溪). 이달선(李達善)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공인(李公仁)이다. 아버지는 제학 이중호(李仲虎)이며, 어머니는 윤구(尹衢)의 딸이다. 이발(李潑)의 아우이다.
생원시에 올라 1577년(선조 10) 태묘별시문과(太廟別試文科)에 을과로 급제하고, 사인을 거쳐 벼슬이 응교에 이르렀다.
이발이 이이(李珥)·성혼(成渾)과 교분이 차츰 멀어지자 서인들이 미워하므로, 시사(時事)에 참여할 수 없음을 알고 고향으로 물러갈 때 함께 낙향하였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모역사건을 계기로 서인들이 집권하자 동인들에게 박해가 가하여져, 형 이발·이급(李汲) 등은 모진 고문 끝에 장살되었고, 이길도 희천으로 귀양갔다가 뒤에 불려와서 역시 죽임을 당하였다. 1694년(숙종 20) 신원되고 부제학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