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청경(淸卿). 좌사(左思) 이중약(李仲若)의 내손(內孫)이다.
가계 및 생애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무인란 이후 임춘(林椿)과 마찬가지로 개경을 벗어나 유락객(流落客)이 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중앙에 기반을 둔 귀족출신으로 보인다.
죽림고회(竹林高會)의 한 사람으로 이인로(李仁老) 등과 친하게 지냈으며, 평소 술을 즐겨서 이인로가 술친구로 꼽았다. 죽림고회의 한 사람인 함순(咸淳)과 함께 최충(崔冲)이 설립한 사학인 문헌공도출신으로 여겨지며, 임춘보다 먼저 개경에 돌아와 과거에 급제하였다.
관직은 그에 대한 일반적 호칭이 이유원(李留院)이었던 점으로 미루어 유원(留院)이라는 하급벼슬을 했음을 알 수 있고, 금나라로 사신을 갔었으며 토적병마서기(討賊兵馬書記)를 지냈다.
이규보(李奎報)의 「논주필사약언(論走筆事略言)」에 이담지가 주필(走筆 : 즉흥적으로 써내려가는 한시 창작법)의 창시자라고 기록되어 있다. 시는 전하는 것이 없고,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그와 공부(共賦)한 시를 보면 자신의 시에 대한 자부심과 빈약한 처지에 대한 한탄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