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경인(景引), 호는 활계(活溪). 아버지는 생원 이종윤(李倧胤)이며, 어머니는 창원정씨(昌原丁氏)로 정담지(丁燂之)의 딸이다.
1570년(선조 3) 생원시에 합격하고 성혼(成渾)에 의하여 사옹원참봉에 천거되었으나, 얼마 뒤 어머니의 질병으로 사직하였다.
1595년(선조 28)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취임하지 못하였고, 이듬 해 사포서별좌(司圃署別坐), 1600년(선조 33) 사근도찰방(沙斤道察訪)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부임하지 않았다.
1605년(선조 38) 사도시주부에 제수되고 이어 형조좌랑에 승진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대학』을 즐겨 읽고 연구하였으며, 인(仁)에 뜻을 두고 경(敬)을 먼저 실행하기에 힘썼다. 남원의 영천서원(寧川書院)에 봉향되었다. 저서로는 『활계유고(活溪遺稿)』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