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로(聖魯). 이관수(李觀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도원(李道源)이다. 아버지는 이시정(李時鼎)이며, 어머니는 홍구택(洪九澤)의 딸이다. 이시복(李時復)에게 입양되었다.
1746년(영조 22) 알성문과에 장원하여 정언(正言)이 되었다. 1749년(영조 25) 수찬, 이듬해에 지평이 되었고, 이어 수찬(修撰)·교리·겸문학·부교리를 역임하였다. 1753년에 영남어사(嶺南御史)가 된 뒤, 부수찬·겸사서·부교리·수찬이 되었다가 1755년에 승지가 되었다.
1757년에 대사간이 된 뒤, 3년 후에 대사헌이 되었다. 1762년에 임금이 사직단에 나아가 기우제를 친히 행하였는데, 편복(便服: 관료의 정복이 아닌 일상적인 평상복)차림으로 참석하였다는 죄로 변방으로 정배할 것이 명해졌으나, 이득종의 강직함이 인정되어 곧 취소되었다.
1764년에 도승지가 되고, 1767년에 형조참판이 되었다. 1773년에 대사간이 되었다가 2년 후 광주부윤(廣州府尹)이 되었으나, 곧 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연화(筵話: 경연에서 주고 받은 대화)의 죄로 파직당하고 다시 임명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