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학촌(鶴村). 평안남도 신안주(新安州) 출신. 1938년 진남포공립상공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에서 은행원으로 근무하다가 일제 말기에 평안북도 풍천(風泉) 탄광에 징용되었다.
광복 후 월남해서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6·25 때는 거제고등학교에서 3년간 교편을 잡았다. 이 때 『현대문학』에 단편 「암표(暗票)」(1955)와 「일요일」(1955)로 김동리(金東里)의 추천을 받고 문단에 등단하였다.
그 뒤 휘문고등학교 · 숙명여자고등학교 · 대광고등학교 등에서 교편생활을 하면서 작품을 발표하였다. 1968년 한국외국어대학 전임강사로 부임하여, 1977년부터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 동안 한국문인협회 이사, 소설가협회 부대표위원에 선임되었고,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에 선출되었다.
초기의 작품 「암표」 · 「일요일」 · 「이웃」(1956) · 「학마을 사람들」(1957) · 「수심가(愁心歌)」(1957) · 「갈매기」(1958) 등에는 그의 생활 체험이 반영된 것으로서 어두운 사회의 단면과 무기력한 인간상(人間像)이 많이 등장한다. 담담한 필치의 서경적 묘사의 수법으로 토착 서민의 생태를 표현, 길흉의 미신 또는 무욕(無慾)의 인간상을 다루었다는 평을 받았다.
그 뒤 「피해자」(1958) · 「오발탄」과 장편 「춤추는 선인장」(1966∼1967) 등에서는 사회고발의식이 짙은 리얼리즘의 문학으로 전환하여 약자의 생존과 침울한 사회상, 종교의 위선, 남녀의 생태 등을 부각시키는 객관적 묘사를 보여 주었다.
후기의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냉혈동물」 · 「돌무늬」 · 「삼계일심(三界一心)」(1973)에서는 인간의 궁극적 모순을 추구하려는 존재론의 회의적 허무가 깃들인 잔잔한 휴머니티가 짙게 깔려 있다.
1958년 처녀창작집 『학마을 사람들』로 제1회 현대문학상 신인문학상을, 1961년 「오발탄」으로 제5회 동인문학상과 1962년 제1회 오월문예상을, 또 「청대문집 개」(1970)로 제5회 월탄문학상(月灘文學賞)을 수상하였다. 창작집으로 『학마을 사람들』 · 『오발탄』 · 『피해자』 · 『분수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