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삼은 조선 영조 때의 무관으로 본관은 함평이고, 자는 원백이며, 호는 백일헌(白日軒)이다.
주곡리에서 출생하여 윤증(尹拯)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705(숙종 32)년 무과에 올랐다. 힘이 세고 지략이 많으며, 기계 제조법과 도창(刀槍) 기예에 능하였다.
경종때 포도대장으로 공을 세웠고, 1725년(영조 1) 어영대장을 지냈는데 경종 때 죄인을 심문한 사건에 연루되어 이정신(李正臣)과 함께 경남 비양에 귀양갔다. 1727년 훈련대장이 되어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분무공신(奮武功臣) 2등에 책록되고 함은군(咸恩君)에 피봉되었다.
주곡리 고택에 소장된 유물은 다음과 같다. 언월도(偃月刀 ; 길이 191.5cm, 무게 2.9kg)는 ‘龍光射 牛頭星(용광사우두성)’이란 명문이 있다.
철추(鐵槌 ; 길이 62cm, 무게 1.3kg)는 둥근 철구에 자루를 끼웠고 철구에는 철정이 박혀 있다. 영정(影幀 ; 길이 134cm, 폭 64cm)은 문복상과 무복상이 있다. 검(劍)은 길이 70cm, 무게 1.8kg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