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이상설 생가 ( )

목차
관련 정보
이상설 생가
이상설 생가
주생활
유적
국가유산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있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이상설의 생가. 주택.
시도자연유산
지정 명칭
진천 이상설 생가(鎭川 李相卨 生家)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탄생지
지정기관
충청북도
종목
충청북도 시도기념물(1987년 03월 31일 지정)
소재지
충북 진천군 진천읍 이상설안길 10 (산척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있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이상설의 생가. 주택.
내용

1987년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은 조선 말기의 의사(義士) 이상설이 태어난 집이다. 그는 1904년에 급제한 다음해에 의정부참찬이 되었다.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후 울분을 참지 못해 길에서 연설한 후 두문불출하다가 1907년 화란의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서 조선이 독립국임을 알리고자 고종의 밀서를 가지고 이준, 이위종과 함께 헤이그에 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후 불라디보스톡에서 망명생활을 하면서 1910년에는 한일합방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내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가옥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一자형 평면인데 흙벽돌을 쌓고 진흙으로 마감하였다. 중앙 2칸에 앞으로 툇마루가 달린 안방을 드렸는데 이 방 사이에는 4분합 미닫이문을 달았고 좌측편에 1칸의 부엌을 드렸다.

그리고 우측에는 툇마루 부분까지 확장한 1칸의 큰 웃방을 드렸는데 옆으로 다시 웃방에서 사용하기 위한 1칸의 툇마루를 드렸다.

구조는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위에 덤벙주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워 삼량집으로 꾸몄다. 지붕은 초가로 되어 있으며, 약 40여 년 전에 무너진 것을 1988년에 보수하였다. 조선 말기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던 이상설 의사가 태어난 유서 깊은 곳이다.

관련 미디어 (4)
집필자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