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은 조선 말기의 의사(義士) 이상설이 태어난 집이다. 그는 1904년에 급제한 다음해에 의정부참찬이 되었다.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후 울분을 참지 못해 길에서 연설한 후 두문불출하다가 1907년 화란의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서 조선이 독립국임을 알리고자 고종의 밀서를 가지고 이준, 이위종과 함께 헤이그에 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후 불라디보스톡에서 망명생활을 하면서 1910년에는 한일합방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내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가옥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一자형 평면인데 흙벽돌을 쌓고 진흙으로 마감하였다. 중앙 2칸에 앞으로 툇마루가 달린 안방을 드렸는데 이 방 사이에는 4분합 미닫이문을 달았고 좌측편에 1칸의 부엌을 드렸다.
그리고 우측에는 툇마루 부분까지 확장한 1칸의 큰 웃방을 드렸는데 옆으로 다시 웃방에서 사용하기 위한 1칸의 툇마루를 드렸다.
구조는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위에 덤벙주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워 삼량집으로 꾸몄다. 지붕은 초가로 되어 있으며, 약 40여 년 전에 무너진 것을 1988년에 보수하였다. 조선 말기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던 이상설 의사가 태어난 유서 깊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