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일 진무공신교서 및 초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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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일 진무공신록권 및 영정 / 녹권
이수일 진무공신록권 및 영정 / 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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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이수일(李守一, 1554∼1632)의 초상화 및 진무공신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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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의 무신 이수일(李守一, 1554∼1632)의 초상화 및 진무공신교서.
개설

1995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가로 184㎝, 세로 99㎝. 이수일의 초상화는 단령(團領 : 깃을 둥글게 만든 공복)과 사모관대(紗帽冠帶)를 갖춰 입은 뒤 바닥에 채전을 깔고 교의자(交椅子)에 앉아서 발을 의답(椅踏) 위에 올려놓고 두 손을 공수한 반우향의 의자에 앉은 전신상[全身交椅坐像]이다. 도상이 17세기 초 공신도상들의 전형적인 특징과 공통점이 매우 많다. 그래서 진무공신(振武功臣)에 녹훈되었을 때 그려진 공신도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

이수일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계순(季純), 호는 은암(隱庵). 충주 출신. 주부(主簿) 이오(李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생원 이자침(李自琛)이다. 아버지는 증 영의정 이난(李鸞)이며, 어머니는 참봉 우담령(禹聃齡)의 딸이다. 아들은 우의정 이완(李浣)이다.

  1. 초상화

낮고 풍만한 오사모(烏紗帽) 그리고 단령 옆 자락의 과장된 트임과 그 아랫부분의 단순화된 직사선 표현, 단령 뒷자락의 형식화된 삼각형 묘사도 17세기 초의 공신도상들과 매우 흡사하다. 교의자의 등받이와 손잡이가 둥그렇게 말린 모습이나 농묵(濃墨 : 짙은 먹물)의 먹선으로 외곽선을 그린 다음 명암 차이를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갈색 진채(眞彩 : 진하고 강하게 쓰는 채색)를 평면적으로 칠한 것도 17세기 초상화의 통상적인 예와 같다.

발을 놓는 의답도 조각 장식을 넣은 목제(木製)로서 윗면에는 돗자리를 묘사하되 짧은 사선을 수없이 넣어 올을 일일이 표현한 것도 17세기의 전형적인 공신도상들과 같은 모습이다.

흉배는 적색 진채 바탕에 금분으로 뇌문(雷文 : 번개무늬)을 선묘(線描)한 다음, 상부 배경에 적황녹청(赤黃綠靑)의 채운(彩雲)을 그리고, 하부 배경에는 모란을 그렸다. 그 다음 중앙에 해치 한 마리를 그린 해치 흉배이다. 무관(武官)을 상징하는 해치는 온몸에 붉은 갈기가 돋고 입을 벌려 포효하며 서 있다. 몸통은 흰색을 칠한 뒤 머리카락과 수염은 녹색 진채를 칠하였다. 그 다음 금분으로 터럭을 선묘했다. 코와 입은 붉은 색을 칠한 뒤 금분으로 선묘했다. 눈은 금분을 칠한 뒤 먹으로 점을 찍어 동공을 표현했다.

관대는 황색 바탕에 검은 무늬가 있는 띳돈을 사용한 서대(犀帶)이다. 띳돈을 끼운 금속 테에는 금분을 칠했다. 전반적인 화법도 기본적으로는 17세기 초의 공신도상들과 거의 유사한 기법이되 다소 세련된 감각이 있다.

얼굴은 굵기와 농담의 차이가 별로 없는 붉은 필선으로 윤곽선과 주름선을 잡았다. 그 뒤 붉은 기가 도는 살색을 가볍게 선염(渲染 : 색칠할 때 한쪽을 진하게 하고 다른 쪽으로 갈수록 엷고 흐리게 하는 일)하였다. 그 다음 주름선 주위를 약간 더 붉은색으로 살짝 우려서 미세하나마 요철을 표현하였다.

얼굴에 배채법(背彩法)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통상의 예와 같다. 하지만 얼굴의 요철 표현에서 도드라진 오악(五嶽 : 안모(顔貌)의 골상 중 높은 부위를 지칭함) 부위도 오목한 부분과 똑같이 붉게 우려서 표현하는 관념적 명암 표현법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신경유(申景裕)나 이중노(李重魯) 등의 정사공신상(靖社功臣像)과는 약간 다른 표현법을 사용했다.

눈은 위 눈꺼풀 부분에 먹선을 덧 그어 강조하고 가는 필선으로 속눈썹을 그렸다. 눈동자는 먹선으로 원형 외곽선을 그리고 내부를 담묵(淡墨)으로 칠하였다. 그 뒤 농묵의 점을 찍어 동공을 표현하였다. 그 다음 흰자위 부분에 흰색을 담채(淡彩)하고 양쪽 눈초리 부분에 약간의 홍기를 주며 마무리했다. 수염은 가늘고 짙은 먹선으로 선묘하였다. 그 뒤 담묵으로 수염 전체를 우렸으며, 부분적으로 갈색 필선과 갈색 선염도 삽입하였다.

단령의 옷주름은 직선 중심으로 단순화된 먹선을 사용하여 묘사하되, 먹선이 17세기 초의 전형적인 공신도상들처럼 굵고 짙지 않아 보다 세련되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단령의 운문(雲文 : 구름무늬)을 선묘한 뒤 전체를 중묵(中墨)만으로 선염하였다. 통상 자색으로 담채했던 이전의 전형적인 공신도상들과는 약간 다른 방식이다. 단령의 옆 자락이 벌어지며 드러난 안감에는 청색과 녹색 진채를 사용하여 강한 장식적 효과를 거두었다. 동시에 흉배나 채전 등의 화려한 채색과 유기적인 호응을 이루는 효과도 얻고 있다.

교의자의 받침 장식에는 은분을 사용하고, 바닥의 채전(彩氈)은 기본색을 담채한 뒤 석채(石彩 : 진채)로 점묘했다. 의답은 기본 형태를 먹선으로 선묘한 뒤 갈색을 담채하고 요철 부분을 담묵으로 선염했다. 측면은 전면보다 전체를 어둡게 우려서 면에 따른 명암의 차이를 표현함으로써 매우 발달된 명암 의식을 보여 주고 있다.

비단은 올이 고운 통견이고, 아교와 백반을 적게 사용하여 반짝임이 없는 텁텁한 느낌이 좋은 편이다. 6·25 피난 시에 세로로 세 겹을 접었기 때문인 듯 비단에 세로 방향으로 두 군데 길게 꺾이고 부러진 상흔이 있다.

현재 얇은 장지에 흉부까지 그린 정면관(正面觀)과 측면관(側面觀)의 초본(草本)도 함께 전해지고 있다. 기본적인 화법은 대체로 정본과 유사하다.

  1. 교서(정사공신녹권)

정사공신녹권은 그 형식과 형태가 통상의 예와 같다. 두루마리 뒷면의 구수(句首) 부분에 “振武功臣二等李守一(진무공신이등 이수일)”의 첨(簽)이 있고, 미자(尾子) 부분에 “金時讓製 柳時慶書(김시양제 유시경서)”의 첨이 있다.

공신녹훈 교서의 반포일은 “天啓五年 四月日(천개오년(1625년) 사월 일)”이며, 교서의 표제는 “敎 謁誠奮威出氣 振武功臣 輔國崇祿大夫 行慶尙右道水軍節度使 兼三道統制使 鷄林府院君 李守一 書(교 알성분위출기 진무공신 보국숭녹대부 행경상우도수군절도사 겸삼도통제사 계림부원군 이수일 서)”라 쓰여 있다.

참고문헌

『한국의 초상화』(조선미, 열화당, 1983)
문화재청(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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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강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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