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장이(長而). 할아버지는 판서 이준민(李俊民)이고, 아버지는 이유훈(李有訓)이며, 어머니는 조응공(趙應恭)의 딸이다.
1605년(선조 38) 진사가 되었다.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가 일어나자 성균관유생으로서 앞장서 윤인(尹訒)·정조(鄭造) 등과 연이어 소를 올려, 인목대비가 안으로 무고를 일으키고 밖으로 역모에 응하였음을 주장하고 폐출할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대사헌 최유원(崔有源)·이지완(李志完) 등의 반대로 실패하였다.
그 해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에 등용되고 정언을 거쳐 1618년 동부승지·우승지를 역임하고, 이듬해 대사간이 되었다. 1620년 좌승지·예조참의를 지냈고, 1622년 이이첨(李爾瞻)의 사주로 강원도관찰사 백대형(白大珩)과 결탁하여 경운궁(慶雲宮)에 유폐된 인목대비를 시해하고자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조정의 삼사관원과 유생들로부터도 중죄를 내리도록 많은 탄핵을 받았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이이첨·백대형·정조·윤인 등과 함께 능지처참되고 동시에 연좌율(緣坐律: 일정한 친족 범위내에서 죄를 지은 자와 함께 처벌되는 형률)이 적용되어 가산이 적몰되고 가족들도 노비로 전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