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초명은 이춘길(李春吉)이다. 아버지는 중대광(重大匡) 이계감(李季瑊)이며, 어머니는 도첨의참리(都僉議參理) 김변(金賆)의 딸이다. 아내는 통례부사(通禮副使) 김계초(金繼貂)의 딸이다.
1325년(충숙왕 12) 29세에 문음(門蔭)으로 팔관보판관(八關寶判官)에 보임되었다. 다음 해 병과 2등으로 급제해 봉거직장(奉車直長)에 오르고 이어 전법좌랑(典法佐郎)을 역임했으며, 1328년 판도정랑(版圖正郎)으로 지초계군사(知草溪郡事)에 나아가 선정을 베풀었다.
그 뒤 감찰·장령·전법총랑(典法總郎)을 역임했고, 경상도찰방으로 나갔다가 이후 10년간 한거하였다. 1353년(공민왕 2) 중정대부(中正大夫)에 개자(改資)되어 성균좨주에 뽑히고, 이어 봉순대부(奉順大夫) 진현관제학(進賢館提學)에 가자(加資)되었다.
이듬해 판통례문사(判通禮門事)에 오르고, 1355년 판위위시사(判衛尉寺事)·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에 보임되었고, 다시 봉익대부(奉翊大夫)로 승위해 우상시(右常侍)가 되었다. 1357년 영록대부 우산기상시(榮祿大夫右散騎常侍)로 집현전학사에 올랐다.
공민왕의 각별한 총애를 입어 내불당(內佛堂)을 감역했고, 어제친필(御製親筆)의 「탄상하교문(嘆賞下敎文)」을 친수해 공적을 인정받았다. 1358년 광록대부 형부상서(光祿大夫刑部尙書)에 이르렀으며, 1361년(공민 10) 6월 세상을 떠났다.
친족은 모두 현달해 고려 후기의 세신대가(世臣大家)로서 영록을 누렸고, 이성계의 위화도회군 이후 이성계의 유력한 지지세력이었으며 조선 건국에 크게 기여하였다.
아들 이거이(李居易)는 태조원종공신(太祖原從功臣)·정사공신(定社功臣)·좌명공신(佐命功臣)으로 문하좌정승에 이르러, 삼조(三祖)를 추증할 때 추충직절수문병의보조공신 특진보국광록대부 문하우정승 판도평의사사사병조사 수문전대학사 영예문춘추관사 서원백(推忠直節守文秉義補祚功臣特進輔國光祿大夫門下右政丞判都評議使司事兵曹事 修文殿大學士領藝文春秋館事 西原伯)에 추증되었다. 1403년(태종 3) 10월 문간(文簡)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