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숙여(淑汝), 호는 정헌(定軒). 경주 출신. 증조부는 이돈항(李敦恒), 할아버지는 이헌석(李憲錫), 아버지는 이정열(李鼎說)이며,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로 사간원정언을 지낸 남경희(南景羲)의 딸이다. 큰아버지 이정약(李鼎若)에게 입양되었다. 할아버지 이헌석에게 수학하였다. 입재(入齋) 정종로(鄭宗魯)의 문인이다.
1831년(순조 31) 진사시에 합격한 뒤, 1836년(헌종 2) 장릉참봉에 임명되었으며, 이어 돈녕부주부·한성부판관·용궁현감·개령현감·강원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1862년(철종 13)에 환폐(還弊)·결폐(結弊)·군폐(軍弊)의 시정대책을 올렸을 때는 왕으로부터 책자를 상으로 하사받았다.
이종상은 서양학문이 국내에 번지자 이를 근심하고 이 사설(邪說)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1866년(고종 3) 미국 배 셔먼호가 침범하자 이를 토벌하기 위하여 경주진 소모장(召募將)이 되어 여러 읍에 걸쳐 불러서 타이르니 응모자와 자원 종군자가 수천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다시 지휘를 기다리라는 관문(關文)이 있어 거행하지는 않았다. 한편, 편지왕래로써 김매순(金邁淳)과 태극치성설(太極穉盛說)을, 남고(南皐)와 인도심사칠변(人道心四七辨)을, 한운성(韓運聖)과 심성설(心性說)을 논하였다. 1883년(고종 20) 영의정 홍순목(洪淳穆)의 주청에 따라 가선대부 사헌부대사헌 겸 성균관좨주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정헌문집(定軒文集)』 18권과 『역학여작(易學蠡酌)』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