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영이(詠而), 호는 송암(松菴). 우의정 이무(李茂)의 후손이다. 아우 이지례(李之禮)와 더불어 문재와 무예에 다같이 뛰어났다.
1567년(선조 즉위년) 무과에 장원급제, 훈련원정으로 있다가 문장에 능통하였으므로 특별히 동반직(東班職)인 주서(注書)에 등용되었고, 곧이어 문무가 겸비한 것을 인정받아 승지로 발탁되었다. 1583년(선조 16)에는 이성현감으로 있으면서 북방 오랑캐의 침입을 격퇴하였다.
그 뒤 1592년 임진왜란 때에는 조방장(助防將)으로 경상도에 나가 여러 번 싸워 공을 세웠으며, 청주가 함락되고 적이 수원에 웅거하자 이를 격퇴하기 위하여 백광언(白光彦) 등과 함께 분전하다가 아우 지례와 더불어 모두 전사하였다.
선무공신(宣武功臣)에 책정되고 병조참판의 추증을 받았다가 후에 다시 형제 모두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태인의 모충사(慕忠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경의(景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