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출생. 1932년경성고등공업학교(京城高等工業學校) 건축과를 졸업하고 남만주철도주식회사(南滿洲鐵道株式會社)에 들어가 일본인과 함께 대련역사(大連驛舍)의 설계와 감독에 참여하였다.
해방의 격변기에는 박흥식(朴興植)의 조선비행기공업주식회사 설계를 맡기도 했으나 완성하지는 못했다. 이 무렵 도시계획에 관심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1946년 도시계획연구회(都市計劃硏究會)를 조직하여 서울공과대학 토목과에 최초의 도시계획 강의를 개설하였다.
「남서울도시계획」(현, 영동지구) 입안, 오늘의 「서울 마스터 플랜」 입안 등은 그에 의해 주도된 것이었다. 1953년에는 김정수와 함께 ‘종합건축연구소’를 창설, 후진양성에도 전력하였다.
그 역시 전지전능을 요구하던 시대의 한 건축인이었으며, 1957년에는 한국건축작가협회 창립 회장을 맡아 창작가로서 건축가의 자의식 발아를 위한 연계주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의 건축고객은 박흥식·삼양사·동아일보사·홍익대학교 등 넓게 퍼져 있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영보빌딩」(1937, 헐림), 「우남회관」(1961, 구 시민회관, 소실), 「조흥은행 본점」(1966, 정인국·유영근 합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