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4.32m. 1981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머리 위의 천개(天蓋)를 제외한 불신(佛身)은 허벅지를 중심으로 하여 상하 2개의 돌로 구성되어 있다. 불상의 양식으로 볼 때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머리 위에는 팔각형의 천개(天蓋)를 쓰고 있는데 이 천개는 따로 조성하여 얹은 것이다. 이와 같이 천개를 쓴 모습은 고려시대 불상에서 보이는 특징적인 형태 중 하나이다. 소발(素髮)의 머리에는 낮고 펑퍼짐한 육계(肉髻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가 표현되어 있다.
평면적인 얼굴에 이목구비가 형식적이다. 적당한 길이의 눈은 양쪽으로 뻗어 있고, 작은 콧구멍이 있는 코는 눈썹과 호선(弧線 : 활등 모양으로 굽은 선)을 그리며 이어져 있다. 그리고 입은 자그마하다. 양쪽 귀는 길게 늘어져 어깨에 닿아 있고, 목에는 깊이가 얕은 삼도(三道)가 돌려져 있다.
불신은 신체의 굴곡과 불의의 옷주름이 거의 생략되어 있어 마치 돌기둥을 보는 듯하다. 법의(法衣)는 통견(通肩 : 어깨에 걸침)이다. 양쪽으로 길게 흘러내린 옷주름 사이로 Ω자형을 뒤집어 놓은 듯한 독특한 옷자락 무늬가 선명하다. 양손은 몸에 밀착시켜 간략한 부조(浮彫 : 돋을새김)로 표현하고 있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안으로 하여 가슴까지 들고 있고, 왼손 역시 손바닥을 안쪽으로 향하게 하여 배 부분에 대고 있다.
하체 역시 도식화가 두드러져 비사실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발은 발가락 끝만을 가지런하게 하여 드러내 놓고 있다. 이러한 불상 형태는 후에 더욱 단순화되고 토착화 과정을 거치면서 마치 장승과 같은 모습으로 변모되기도 한다.
이 석불입상의 괴체(塊體)와 같은 모습은 고려시대 전기의 충청북도 괴산 미륵리 석불입상 과 비견되는 예이다. 특히 팔각형의 천개, 형식화된 얼굴, 원통형의 불신 및 옷자락 무늬 등으로 미루어 같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 같은 거불(巨佛) 형식은 논산의 개태사(開泰寺) 석조삼존불상을 계승한 일련의 불상들로 충청도 · 경기도 일대에서 고려시대 전기에 주로 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