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축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중기에, 공조참판, 형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자임(子任)
사촌(沙村)
시호
안양(安襄)
이칭
완산군(完山君)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38년(중종 33)
사망 연도
1614년(광해군 6)
본관
전주(全州)
주요 관직
호조좌랑|예안현감|형조정랑
관련 사건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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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공조참판, 형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임(子任), 호는 사촌(沙村).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현손이며, 순성군(順成君) 이개(李𧪚)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헌양부정(巚陽副正) 이사조(李嗣祖)이고, 아버지는 극포수(極浦守) 이희남(李希男)이며, 어머니는 이조참판 남세준(南世準)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76년(선조 9)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다. 그 뒤 호조좌랑·예안현감·형조와 공조의 정랑 등을 거쳐, 1589년 안악군수로 있을 때 한준(韓準)·박충간(朴忠侃)·한응인(韓應寅)과 함께 정여립(鄭汝立)의 모역을 조정에 고변한 공으로 이듬해 평난공신(平難功臣) 1등으로 완산군(完山君)에 봉하여지고 공조참판으로 승진되었다.

그 뒤 형조판서·우참찬을 역임하고 1592년 임진왜란 때에는 건의대장(建義大將) 심수경(沈守慶)의 부장으로 의병을 지휘하였고, 1594년에는 진휼사가 되어 서울의 백성을 구휼하였다. 이어 좌참찬을 거쳐, 1611년(광해군 3) 완산부원군(完山府院君)에 올랐다.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안양(安襄)이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국조방목(國朝榜目)』
『월사집(月沙集)』
집필자
김용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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