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군정(君貞), 호는 졸암(拙庵) 또는 낙빈(洛濱). 직산(稷山) 출신. 세종의 제4남 임영대군(臨瀛大君) 이구(李璆)의 후손이며, 이주(李澍)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진(李珎)이고, 아버지는 당은부수(唐恩副守) 이휘(李徽)이며, 어머니는 오황(吳滉)의 딸이다.
1559년(명종 14) 정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1562년 저작 재임 시 효행으로 형조좌랑으로 특진되었으며, 사헌부장령 때 중 보우(普雨)의 죄상을 논핵하였다가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또한, 일찍이 을사사화 때의 소윤파인 이기(李芑)·정순붕(鄭順朋)·임백령(林百齡) 등의 보익공신(保翼功臣) 호를 삭탈하는 전지(傳旨)를 올려 간흉(奸凶)의 죄상을 폭로하기도 하였다.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가 죽자 3년 동안 죽을 먹으며 피눈물을 흘리다가 마침내 실명하였다.
탈상한 뒤 승지에 제수되었는데 실명한 자를 왕 가까이 두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대하니 명종이 교서를 내려 “사람들은 그의 눈을 미워하지만 나는 그의 눈을 사랑한다.”라고 하여 임금의 사랑이 매우 깊음을 알 수 있다. 벼슬은 충청도관찰사까지 승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