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사이(士以), 호는 수석(水石). 이제신(李濟臣)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자(正字) 이기준(李耆俊)이고, 아버지는 현령 이중기(李重基)이며, 어머니는 임색(任穡)의 딸이다.
1612년(광해군 4)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광해군대 정쟁으로 사화가 일어나 많은 사류(士類)들이 제거되자, 그의 아버지와 함께 고향에 돌아가 고기잡이로 소일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후 사포서별제(司圃署別提)가 되고, 1628년(인조 6)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필선·통례원상례(通禮院相禮)·지평(持平)·정언(正言)·장령(掌令) 등을 역임하였다.
그 뒤 1634년에 인천부사로 나가 선정을 베풀어 선행자를 표창하는 표문(表門)을 받았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남한산성에 들어가 독전어사(督戰御史)가 되어 풍설을 무릅쓰고 방어에 힘썼다. 난이 끝난 뒤 호종(扈從)의 공로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그뒤 동부승지·좌승지·공조참의·영흥부사 등을 역임하고 1654년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