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언화(彦和). 이유담(李維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하(李夏)이고, 아버지는 부제학 이사상(李師尙)이며, 어머니는 정철(鄭哲)의 딸이다.
1696년(숙종 22) 진사시에 합격하고, 1712년(숙종 38) 정시문과에 을과로 아우 헌장(獻章)은 병과로 함께 급제하였다. 이 때 과거시험의 부정이 몇 가지 저질러졌는데, 그 중의 하나가 이들 형제의 답안지가 필적이 같다는 이유로 나포되었다.
그 뒤 여러 차례의 신문이 있었으나 무죄로 처리되었으며, 1716년에는 주서(主書)에 천거되었으나 간원의 청으로 삭제되었다. 이후 임진년의 과폐(科弊)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어 복과(復科: 과거에 급제한 자를 낙제시켰다가 다시 합격시키는 일), 삭제 등이 교차되다가 결국 복과하게 되었다.
이 사건이 이같이 몇 년간 지속된 것은 노론과 소론의 대립에서 비롯되었는데, 그의 아버지 사상은 소론의 준소(峻少: 노론에 대한 강경론자) 계열로 활약이 컸던 인물이다.
그가 죽자 1723년(경종 3)에는 증직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영조가 즉위하면서 이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되어 숙종대의 처음 전교(傳敎)대로 다시 시행할 것을 명하여 삭제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