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의 후궁인 인빈김씨(仁嬪金氏)의 사당과 묘소인 저경궁(儲慶宮)과 순강원(順康園)에서의 제사와 관련된 각종 식례(式例)를 1756년(영조 32)에 제정하여 기록해놓은 책이다. 이 식례는 「저경궁순강원식례」, 「저경궁순강원 대소제향축식(大小祭享祝式)」, 「궁원제의」, 「저경궁의(儲慶宮儀)」, 「순강원의물(順康園儀物)」, 「저경궁순강원 대소제향진설도식(大小祭享陳設圖式)」의 차례로 구성하였으며, 끝에는 이를 교정(校正)한 관원 명단을 수록하였다.
이 책의 서두에는 영조가 직접 지은 서문인 「어제저경궁 궁원식례소서(御製儲慶宮宮園式例小叙)」가 있다. 여기에 의하면, 1753년(영조 29)에 거행하지 못하다가 2년 후인 1755년(영조 31) 6월 2일에 이증(李增)의 집에 있던 인빈김씨의 신주를 원종의 옛집이었던 송현궁(松峴宮)에 봉안하고, 궁원의 이름을 정했다고 한다.
또 그날로 시호를 의논하여 정하고, 영조가 친히 신주에 글씨를 썼다. 같은 달 22일에 시책보를 올리고 초가을에 봉안례를 거행하고 나서, 의문(儀文)과 축식의 정례(定例)가 없어서는 안 될 것 같아 이를 정한 것이 이 식례이다. 한 편은 저경궁에 봉안토록 하였다.
이 책은 어제 서문과 식례, 축식, 제의(祭儀), 의물(儀物), 진설도식 등의 차례로 구성되었다. 서문은 좌참찬 이철보(李喆輔)가 썼다. 식례는 「저경궁식례」29조와 「순강원식례」21조로 나누어져 있다. 이 식례는 감실에서 사용하는 보(袱)와 욕석(褥席)의 재질과 문양, 주렴과 장(帳), 출주(出主)와 납주(納主)의 담당자, 삼헌관의 규정, 전배와 망배례의 위치, 삭망제 때의 서계와 이의(肄儀), 입취위(入就位)와 관세(盥洗), 감찰점시(監察點視), 재계, 수직중관입접처(守直中官入接處), 수복의 요포(料布), 정자각, 북신문의 주렴, 석물의 배설, 제정(祭井) 건설, 촉대 등 기물의 신조(新造), 제집사의 복식, 재계 등에 관한 사항들이다.
그 뒤에는 「저경궁순강원대소제향축식」이 있는데, 저경궁사중삭시제축식·저경궁절사축식·순강원기신제축식·순강원절사축식 등 4종이다. 이 축식은 모두 영조가 친히 지은 것이며, 관련 기사 2건이 이어져있다. 기사의 내용은 육상궁의 축문에 『주례(周禮)』와 『춘관(春官)』에 의거하여 선비(先妣)라 칭하는 것처럼 저경궁에도 일체 거행토록 할 것과 저경궁에는 효(孝) 자를 뺀 증손이라 칭하라는 것 등이다.
「궁원제의」는 제사 때의 절차를 상세히 규정한 의주(儀註)이다. 의주의 종류로는 저경궁전배의·저경궁작헌례의·저경궁시제친제의·저경궁절제친제의·저경궁시제섭행의·저경궁절제섭제의·순강원전배의·순강원기신제친제의·순강원기신제섭제의 등 9종이다.
「저경궁의」는 신의(神倚)와 신탑(神榻) 등 사당 내의 여러 의물에 관한 일종의 도설이다. 따라서 제목에 의물(儀物)의 ‘물’ 자가 빠진 듯하다. 「순강원의물」은 정자각과 원상(園上)의 각종 의물을 소개하였다. 혼유석과 상석부터 제정에 이르기까지 수량과 위치 및 조성 방법 등을 간략히 소개하였다.
「저경궁순강원 대소제향진설도식」은 저경궁의 시제·절사·고유제의 제물진설도와 제기수, 순강원의 기신제·절사·고유제의 제물진설도와 제기수를 차례로 수록한 것이다. 제물진설도는 제물의 진설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그 다음에 제탁의 각 항마다 제물과 기수(器數)를 적어놓았다. 이 책의 끝에는 이 식례를 교정(校正)한 의정부 좌참찬 이철보 등 5명의 명단을 실었다.
이 식례는 왕권과 왕실의 안정된 유지와 발전을 위해 영조가 내세웠던 효제(孝悌)의 정치논리를 철저히 시행하는 과정에서 제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