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9년(목종 12) 서북면도순검부사 이부시랑으로 도순검사 강조(康兆)와 함께 목종을 폐하고 현종을 옹립한 뒤, 강조는 중대사(中臺使)가 되고 이현운을 중대부사(中臺副使)가 되었다.
1010년(현종 1) 10월, 거란의 성종이 강조가 폐위한 사실을 구실로 40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쳐들어오자 행영도통부사(行營都統副使)가 되어 통주(通州: 지금의 평안북도 선천)에서 행영도통사(行營都統使) 강조와 더불어 이를 막다가 패배, 포로가 되어 항복하였다.
거란주(契丹主)가 강조의 결박을 풀어주고 묻기를 “네가 나의 신하가 되겠느냐?”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나는 고려사람인데 어찌 다시 너의 신하가 되겠느냐?”라고 하였다.
거란주가 이현운에게 그와 같이 물으니 대답하기를, “두 눈이 이미 새 일월을 보았는데 한 마음이 어찌 옛 산천을 생각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강조가 노하여 이현운을 발길로 차면서 말하기를, “너도 고려사람인데 어찌 이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