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공(珙). 호는 백인당(百忍堂). 선조의 일곱째아들이며, 어머니는 정빈(靜嬪) 민씨(閔氏)이다.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여 선조가 특히 사랑하였으며 공부를 시작하자 학업이 일취월장하였다. 12세에 인성군으로 책봉되었으며, 장성하여서는 사옹원과 종부시의 도제조와 종친부의 유사(有司)를 겸직하였다. 공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관대하면서도 엄격하였으므로 관기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광해군의 시기하는 마음이 점점 더 커가는 것을 보고 이이첨(李爾瞻) 등이 사형수를 사주하여 무고하니, 대궐 문밖에 자리를 깔고 처분을 기다리기를 며칠씩 하다가 울분한 마음에 병이 들어 3년간이나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왕은 숙부의 예로써 대우하였으나,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고 그때 잡혀 들어온 자들이 모두 혐의를 뒤집어 씌웠으므로 왕도 할 수 없이 간성으로 귀양보내었다.
후에 원주로 옮겼다가 어머니 민씨의 병이 위독하므로 관대한 처분을 받고 돌아왔다. 그러나 1628년 유효립(柳孝立) 등이 대북파의 잔당을 규합하여 모반을 기도할 때에 왕으로 추대되었다 하여 다시 진도에 유배되었다가 자살을 강요받고 죽었다. 1637년에 복관되었다. 시호는 효민(孝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