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태의 후손 최형호(崔蘅鎬)가 유문(遺文)을 모아 간행한 것으로, 권2의 끝에 이예중(李禮中)의 발문이 있다.
2권 1책. 연활자본. 연세대학교 도서관, 서울대학교 도서관, 고려대학교 도서관,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에 시·서(書)·잡저, 권2에 서(序)·기(記)·발(跋)·상량문·축문·제문·묘지·행장과 부록으로 만사·제문·행장·유사·광지(壙誌)·묘표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자경(自警)의 뜻을 담은 시구가 많다. 저자는 비록 34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지만, 평생 수양을 게을리 하지 않고 진양 부근의 산에 들어가 심신수도를 계속하였다. 저자의 시도 자연히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풍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거가십건시(居家十件詩)」를 들 수 있다.
「제소상팔경화병(題瀟湘八景畵屛)」은 마치 시인 자신이 중국 대륙을 직접 가보고 지은 것처럼 생동감이 있고 회화적이다. 당대(唐代) 왕유(王維)의 시풍과 비슷하다. 또, 금오산(金烏山)·가야산(伽倻山) 등의 명승지를 직접 찾아다니며 그곳의 풍물을 그린 풍물시가 몇 편 있다. 「인녀사(隣女詞)」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 상민(常民)의 아내를 노래한 작품이다.
잡저 가운데 「척양학사의(斥洋學私義)」는 조선이 강화도조약을 체결한 데 대한 수치심과 울분이 담겨 있는 글이다. 당시 아편과 기독교를 앞세우고 들어왔던 서양 세력의 위선과 위험성을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미풍양속을 해치고 백성을 타락시키는 양학의 물결을 강력한 법률로써 제재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삼문(三問)」에서는 주·색·잡기의 화를 비유로 들어 인생의 참 도(道)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주인과 객이 대화하는 형식을 빌려 기술하고 있다. 「아농대(啞聾對)」 역시 주인과 벙어리객의 대화를 빌려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것이다. 즉, 진정 의로운 사람은 입으로만 떠벌이는 것이 아니라 벙어리처럼 묵묵히 자신의 삶을 자성해가는 사람이라고 규정하였다.
권2에는 「자경집서(自警集序)」, 그리고 「조침문(弔針文)」과 같은 가전체(假傳體)류의 문장으로 「수돌기(修突記)」·「화로중수기(火爐重修記)」 등이 있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의 유산을 고수하기 위한 지식인의 고뇌와 노력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