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식(林景軾)은 경상북도 안동부(安東府) 관내의 보주(甫州) 사람으로, 자는 대허(大虛)이다. 할아버지는 태자소사(太子少師)에 추봉된 임자고(林子高)이고, 아버지는 검교태사 수사도 문하시랑평장사(檢校太師 守司徒 門下侍郞平章事)를 지낸 임간(林幹)이다. 어머니는 호부시랑(戶部侍郞)이자 태자태보(太子太保)에 추봉된 김의선(金義先)의 딸인 낙랑군대부인(樂浪郡大夫人)이다. 검교호부상서 유림랑 시어사중승(檢校戶部尙書 儒林郞 試御史中丞)을 역임한 임경화(林景和)와 형제지간이다.
임경식의 첫 번째 아내는 조의대부 판소부감사(朝議大夫 判少府監事) 강복여(康福輿)의 딸로, 4남 3녀를 두었다. 두 번째 아내는 수사도 문하시랑평장사 판이부사(守司徒 門下侍郞平章事 判吏部事)를 지낸 최자영(崔子英)의 딸로, 2남 2녀를 두었다.
대부소경으로서 서경분사감군사(西京分司 監軍使)로 재직하던 중 1161년( 의종 15) 7월 21일 향년 63세로 사망하였다. 8월 2일에 화장하고, 서울 서운사(瑞雲寺) 남쪽 기슭에서 장례를 치렀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경전과 역사서를 두루 공부하였지만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였으며, 고위 관료인 아버지의 음서(蔭敍)로 장사랑 군기주부동정(將仕郞 軍器主簿同正)이 되었다. 예주통판(禮州通判), 경령전판관(景靈殿判官), 양주방어부사(梁州防禦副使), 시전구서령(試典廐署令), 권지감찰어사(權知監察御史), 안북대도호부판관(安北大都護府判官), 대부시승 권지감찰어사(大府寺丞 權知監察御史), 북계분대(北界分臺), 합문지후(閤門祗候) 등을 지냈다.
이어 충청도주(忠淸道州)의 선군사(選軍使)가 되어 병사를 선발하는 일을 훌륭하게 수행하여 임금의 칭찬을 받았다. 1154년(의종 8)에 시상승봉어(試尙乘奉御)로 임명되어 비어(緋魚)를 하사받았으며, 상서도관 형부우사원외랑(尙書都官 刑部右司員外郞)으로서 하정사(賀正使)가 되어 금(金)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또한, 전라주도(全羅州道)의 봄 · 여름철의 안찰부사(按察副使)가 되어 완산(完山) 일대의 도적 무리를 소탕하였으며, 이 공으로 대부소경(大府少卿)에 발탁되고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받았다. 또 검교호부상서(檢校戶部尙書)의 관직을 추가로 받았으며, 대부소경으로서 서경분사감군사를 겸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