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3책. 궁체 필사본. 임신년은 난이 평정된 1812년(순조 12)이다. 표지제목은 ‘평서록(平西錄)’으로 되어 있다. 홍경래를 ‘도젹’·‘역괴’ 등으로 호칭하고, 해당 지역 지방관의 장계(狀啓)와 조정 관료들의 계문(啓文)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관변측의 기록인 듯하다.
1811년 12월 18일 홍경래가 가산(嘉山)·곽산(郭山)에서 기병한 것으로부터 이듬해 임신년 6월 26일 평정 사후처리까지 교전과 평정 관계 기사를 상세히 수록하였다. 체재는 매일 매일의 상황을 머리기사로 짧게 기술하고 이어 한 칸 내려서 내용 설명을 길게 가하였다. 간혹 기사문 중에 사용된 고법전(古法典) 용어 밑에다 같은 한글로 협주를 달기도 하였다.
권1의 머리기사에서는 “상지십일년 신미의 관셔 도젹 홍경ᄂᆡ 등이 여러ᄒᆡ 흉년을 인ᄒᆞ여 도당을 소취ᄒᆞ여 십이월 십팔일의 긔병ᄒᆞ여 쳥북의 반ᄒᆞ여 두길노 니러나 가산군슈 뎡시ᄅᆞᆯ 쥭이고 ᄉᆞ경의 곽산군슈 니영식을 잡다 ○ᄉᆞ경의 안쥬셩쥬ᇰ이 야경ᄒᆞ다.”라 하였다.
권3의 마지막 기사에서는 “이십뉵일 입시시의 영의졍 김ᄌᆡ찬의 소계의 유상필은 임의 쥰직을 지ᄂᆡ였ᄂᆞᆫ지라 승셔의 명이 잇셔ᄉᆞ오니 의례가ᄌᆞ하옵고 김계홍은 ᄯᅩᄒᆞᆫ 승셔 시ᄒᆡᆼᄒᆞ미 ᄒᆞ여 ᄒᆞ니잇가 젼왈 윤ᄒᆞ시다 ○금부도ᄉᆞ 홍쥰ᄆᆡᄅᆞᆯ 거병역괴 경ᄂᆡ의 쳐 최녀와 아오 졍ᄂᆡᄅᆞᆯ 쳐참ᄒᆞ고 모반ᄃᆡ역죄인 니ᄌᆡ의 아ᄃᆞᆯ 치습을 쳐교ᄒᆞᆫ 후의 입ᄂᆡᄒᆞ다.”라 하였다.
한문본으로 「임신평란록(壬申平亂錄)」이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어 번역 여부와 판본의 선후 관계를 비교, 고찰할 만하다. 이 밖에 각기 상이한 관점과 문체로 홍경래의 난을 기록한 「임신록(壬申錄)」·「신미록」(한글본)·『홍경래실기』(한글본) 등이 있어 문학사적으로도 좋은 비교거리가 된다. 장서각 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