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구(璆). 자는 헌지(獻之). 세종의 넷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이다. 부인은 의령남씨(宜寧南氏)로, 우의정 남지(南智)의 딸이며, 전주최씨(全州崔氏) 봉례(奉禮) 최승령(崔承寧)의 딸을 재취하였다.
1428년(세종 10) 대광보국임영대군(大匡輔國臨瀛大君)에 봉해졌으며, 1430년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일찍이 세종의 총애를 받아 1442년 원윤(元尹)이 되었으며, 1445년에는 세종의 명을 받아 총통(銃筒) 제작을 감독하였고, 2년 후에는 종성지방의 경재소(京在所) 일을 관장하였다.
1450년(문종 즉위년)에 문종의 명을 받아 화차를 제작하였다. 세조가 정권을 잡자 그를 보좌하여 신임을 받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천성이 활달하였고 무예와 의론(議論)에 뛰어났으며, 왕손이면서도 근검하였고 사람들을 대하는 데 교만하지 않았다.
아들로 이주(李澍)·이준(李浚)·이순(李淳)·이정(李淨)·이징(李澄)·이함(李涵)·이인(李潾)·이탁(李濯)·이옥(李沃) 등을 두었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