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을 따서 ‘장혼자’ 또는 그의 호를 따서 ‘이이엄자’라 부르고 그 활자로 찍은 책을 ‘장혼자본’ 또는 ‘이이엄자본’이라 일컫고 있다.
그가 찍어낸 여러 책 중 1810년(순조 10)에 찍은 『몽유편(蒙喩篇)』이 최초의 인본인 듯하며 새겨 찍음이 정교하다. 장혼은 1790년(정조 14)에 교서관(校書館)의 사준(司准)에 임명된 바 있고 또 시와 서예에 능하여 여러 종의 저서와 편찬이 있다.
아마도 그의 이와 같은 활자인쇄의 경험과 문필에의 취미가 마침내 활자를 만들어 책을 찍어내게 하였던 듯하다. 이 활자는 그가 죽은 뒤에도 철종·고종 연간에 이르기까지 도교 서적을 비롯하여 문집, 의서(醫書) 등 많은 민간서적의 인출에 사용되었다.
민간이 만든 활자로는 소형이면서도 글자체가 정연하고 잘 만들어진 편이며, 한글활자도 정교롭게 만들어져 사용되었다.
그 인본으로는 『몽유편』·『시종(詩宗)』·『성령집(性靈集)』·『몽관시고(夢觀詩稿)』·『반포유고(伴圃遺稿)』·『연경편(演經篇)』·『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관제보훈(關帝寶訓)』·『경선경(敬善經)』·『삼성제군충효경(三聖帝君忠孝經)』·『현화보란(玄化寶鸞)』·『개화대정(開化大程)』·『맥경(脈經)』 등 비교적 여러 종이 전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