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가 되었고, 성균관대사성을 지낸 뒤 밀직사사(密直司使)에 올랐다. 충숙왕이 심왕파(瀋王派)의 모함을 받아 원나라에 억류되어 있을 때 한종유(韓宗愈)와 더불어 왕의 환국을 요청하였다.
그 공으로 1327년(충숙왕 14) 찬성사로서 2등공신에 올랐으며, 다음해 첨의정승(僉議政丞)으로 승진하였다. 1329년 금마군(金馬郡)에 있는 무강왕릉(武康王陵: 백제 제30대 무왕의 능)을 도굴한 범인을 놓친 전법관(典法官)을 탄핵하였으나, 찬성사 임중연(林仲沇)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이 때 나이 76세로서 궤장이 하사되었다. 1330년 충혜왕이 즉위한 뒤 김태현(金台鉉)을 권정동행성사(權征東行省事)로 임명하자 충숙왕이 정방길로 대신하게 하였으나, 얼마 뒤 충숙왕·충혜왕을 서로 이간시킨다고 하여 다시 김태현을 기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