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이건(以健), 호는 계담(桂潭)·계헌(桂軒). 현감 정광린(鄭光鄰)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부장(部將) 정희경(鄭姬卿)이고, 아버지는 천문교관(天文敎官) 정화(鄭華)이며,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이다.
동생 정복원(鄭復元)과 함께 송도에서 서경덕(徐敬德)에게 수업하였다. 1546년(명종 1) 사마시를 거쳐 1555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권지부정자가 되었다.
내외의 여러 관직을 거쳐 1567년 고부군수가 되었으며, 이 때 간신들이 국론을 분열시켜 국정을 어지럽히고 많은 충신과 현사(賢士)가 죽음을 당하게 됨에 통탄하여 그 신원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왕은 이 장계사건에 대하여 연소문관이 공론을 빙자하여 반대당의 신원을 요구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여 처벌하고자 하였으나, 윤원형(尹元衡)의 변명으로 화를 면하였다.
그 뒤 무고함이 밝혀져 선조 초 지평에 임명되었으며, 계속하여 호조참의·돈녕부도정을 역임하다가 1592년(선조 25) 은퇴하였다. 시문에 밝았으며, 유영경(柳永慶)과 교유하면서 시문으로 자연과 인정을 노래하는 글을 많이 남겼다. 저서로 『계담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