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고성리 산성 ( )

건축
유적
문화재
6세기 이후, 신라의 영향을 받아 축조한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고성리 마을에 위치한 고대 산성. 도기념물.
유적
건립 시기
6세기 이후 신라
관련 국가
신라
둘레
670m
소재지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고성리
시도지정문화재
지정기관
강원도
종목
강원도 시도기념물(1994년 09월 23일 지정)
소재지
강원 정선군 신동읍 고성리 산319번지 외 3필지
내용 요약

정선 고성리 산성(旌善 古城里 山城)은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고성리 마을에 있는 테뫼식 산성이다. 산성의 둘레는 약 670m이다. 이 산성은 토축 구간과 석축 구간을 교대로 축조한 독특한 축조 방식을 보여준다. 산성에서는 개(蓋), 1단이나 2단 투창의 대각편, 파상문이나 반원점문이 시문된 토기편 등 대체로 5~6세기 경의 신라 토기들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유물과 축성법으로 보아 이 산성은 6세기 이후 신라의 영향을 받아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정의
6세기 이후, 신라의 영향을 받아 축조한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고성리 마을에 위치한 고대 산성. 도기념물.
형태와 특징

정선 고성리 산성(旌善 古城里 山城)은 해발 450m의 산 정상 부근을 둘러싼 테뫼식 산성이다. 산성의 둘레는 약 670m이다. 이 산성은 영월-정선-강릉과 삼척, 평창-태백-안동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다. 남쪽의 배후 산지에서 북쪽으로 내려오는 능선의 돌출한 봉우리에 산성이 있으며, 그 아래로는 남한강이 흐른다.

발굴경위 및 결과

정선 고성리 산성은 4개의 주1 주2과 4개의 석축 주3이 교대로 축조된 산성이다. 고성리 산성의 이러한 구조는 일반적인 산성의 구조와는 다른 독특한 형태이다. 2004년 1토축성과 1석축성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져 이 산성의 축조 기법을 알 수 있게 되었다.

1토축성은 둘레 108m로 이 산성의 성곽에서 가장 긴 구간에 해당한다. 1토축성의 규모는 너비 6~6.5m, 높이 2.3~3m 정도이다. 토축성은 기반암 위에 10~15cm 정도의 두께로 목탄과 점토를 깔고, 점토와 석회암을 이용해 2.6m 정도의 높이로 주10한 '토석 혼축 기법'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토축성의 외벽 기저부는 점토층 위에 길이 20~50cm 정도의 석회암제 판석을 쌓았는데, 경사면에 계단식으로 6~7단을 맞물리게 들여쌓기를 하였다. 또한 너비 2m의 석렬을 만들어 토성이 붕괴되는 것을 방지하였다.

1석축성은 이 산성의 석축성 가운데 길이가 가장 짧다. 산 정상부의 지형에 맞춰 꺽이는 부분을 직각에 가깝게 조성했는데, 그 구간에 1석축성이 축조되었다. 축조 기법은 1토축성과 마찬가지로 기반암인 석회암을 굴착한 후에 점토와 주4층을 깔고 다져서 수평을 맞추었다. 성돌은 길이 30cm, 두께 10cm 내외의 석회암제 판석을 사용했으며, 가로 방향으로 수평쌓기를 하였다. 체성(体城)은 8단인 1.1m까지는 거의 수직으로 쌓았으며, 그 위쪽으로는 들여쌓기를 하였다. 사용한 석재의 크기가 정연하지 않아 그 사이에 생긴 틈은 작은 주5을 끼우고 점토로 메웠다. 석축 구간에서는 구간을 구획한 구획선이 보인다. 또한 구간에 따라 주6과 편축 기법을 섞어서 사용하였다. 남쪽의 방비가 취약한 곳에는 주7을 쌓아 성의 방비를 보완하였으며, 기단을 주8하였다. 조사 결과 1석축성은 토축성을 먼저 축조한 이후 나중에 석축성으로 개축한 것으로 밝혀졌다.

산성 내부에서는 집수시설 1개소, 추정 문지 1개소, 추정 건물지 1개소, 용도 미상의 석렬 등이 확인되었다. 집수지의 길이는 7,1m, 너비는 6m 정도이며, 집수지 내부에 대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산성에서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토기류와 기와류이며, 소량의 철기류와 석기류가 확인되었다. 출토된 토기 가운데 대각도치형 꼭지가 부착된 개(蓋), 1단이나 2단 투창의 대각편, 파상문이나 반원점문이 새겨진 토기편들은 대체로 5~6세기 경주 중심 신라 토기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이다. 기와는 점토띠흔이 확인되는 비교적 옛날 양식에 속하는 기와편들이 확인되었다. 이 기와편들은 주9을 대신해 갈대나 지푸라기를 사용해 만들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또한 원통의 기와통을 사용하지 않고 특이하게 무와통 기법으로 기와를 만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의의 및 평가

출토된 유물들을 통해서 정선 고성리 산성은 대략 6세기 이후 신라의 영향을 받아 축조한 산성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산성은 강원도 지방에서 확인된 성곽 가운데 가장 오래된 성곽 유적의 하나이다. 또한 토축성과 석축성의 축조와 관련하여 성곽의 발달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강원문화재연구소, 『旌善 古城里山城』(2006)
충북대학교 호서문화연구소, 『정선 고성리 산성과 송계리 산성 및 고분군』(1997)

논문

강릉대학교 박물관, 「정선군의 관방유적」(『정선군의 역사와 문화유적』, 정선군 · 강릉대학교 박물관, 1996)
김선주, 「정선 고성리산성 축성방법 고찰」(『강원사학』 25, 2011)
홍영호, 「신라의 하슬라 경영 연구」(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2)
주석
주1

성이나 집, 담벼락 따위를 흙으로 쌓음. 또는 그렇게 쌓은 건축물. 우리말샘

주2

총 346.3m : 1토루 108m, 2토루 26.7m, 3토루 70.4m, 4토루 144.2m

주3

총 318.8m / 1석축 55.7m, 2석축 73.1m, 3석축 117.5m, 4석축 72.5m

주4

돌을 잘게 깨뜨려 부숨. 또는 그 돌. 우리말샘

주5

돌을 쌓아 올릴 때, 돌과 돌의 틈에 박아 돌리는 돌. 우리말샘

주6

성을 쌓을 때, 중간에 흙이나 돌을 넣고 안팎에서 돌을 쌓는 일. 우리말샘

주7

성 위에 낮게 쌓은 담. 여기에 몸을 숨기고 적을 감시하거나 공격하거나 한다. 우리말샘

주8

건물이나 구조물 따위의 기본적인 것에 일부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지음. 우리말샘

주9

참나뭇과의 낙엽 활엽 교목. 높이는 10미터 정도이며, 잎은 어긋나고 긴 타원형으로 두꺼우며 뒷면에는 털이 나 있고 마른 뒤에도 겨우내 붙어 있다가 새싹이 나올 때 떨어진다. 봄에 황갈색의 잔꽃이 이삭 모양으로 늘어져 피고 열매는 2cm 정도의 갸름한 견과(堅果)로 10월에 익는다. 재목은 단단하여 침목, 선박재, 기구재 따위로 쓰고 나무껍질의 타닌은 물감 또는 가죽을 다루는 데 쓰며, 열매는 주로 묵을 만들어 먹는다. 우리말샘

주10

판자와 판자 사이에 흙을 넣고 공이로 다지는 일. 또는 그 판자와 공이. 우리말샘

집필자
최인선(순천대학교 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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