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발포 만호성 ( )

건축
유적
문화재
조선 전기에, 축성된 전라남도 고흥군에 있는 수군진성. 시도기념물.
유적
건립 시기
1490년(성종 21) 윤8월
관련 국가
조선
관련 인물
이순신 장군
둘레
560m
소재지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발포리
시도지정문화재
지정기관
전라남도
종목
시도기념물(1977년 10월 20일 지정)
소재지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발포리
내용 요약

고흥 발포 만호성(高興 鉢浦 萬戶城)은 전라남도 고흥군에 있는 조선 전기에 축성된 수군진성이다. 발포진은 1439년(세종 21)에 수군진으로 설치되었으며, 발포진성은 1490년 축성되어 1895년 발포진이 폐영될 때까지 운영되었다. 1580년(선조 13) 이순신(李舜臣)이 충청병사해미군관(忠淸兵使海美軍官)에서 발포만호로 부임하여 18개월 동안 재임하였으며, 이곳에 거북선[龜船]이 있었다고 한다. 성곽의 둘레는 560m이며, 현재 체성의 일부가 복원되어 있다.

정의
조선 전기에, 축성된 전라남도 고흥군에 있는 수군진성. 시도기념물.
둘레와 축조 방법

성곽의 둘레는 560m이며, 1977년 발굴조사 당시 체성(体城) 대부분이 무너지고 서벽 100m와 북벽 20m만 남아 있었다. 남아 있는 체성의 높이는 약 1.7∼2m 정도였고, 너비는 3.2m였다. 현재 서벽과 북벽 일부가 정비되어 복원되었다.

체성의 외벽은 황갈색 생토층 위에 황토와 잔자갈로 다지고 그 위에 너비 30∼40㎝, 두께 10∼16㎝ 정도 크기의 주5형 석재를 주6으로 놓았다. 그 위에 1단으로 0.75∼1m 정도의 주7 자연 주8을 안쪽으로 들여 외벽을 쌓았으며, 돌의 바른면을 바깥으로 놓아 벽면을 정연하게 만들었다. 내벽은 부정형 할석을 이용하여 1열로 쌓고, 적심부(積心部)에는 흙과 돌을 채운 편축식 기법을 사용하였다.

발굴 경위 및 결과

최근 내부 조사를 통해 주9 1기, 석열 3기, 제철공방지 4기 등 다양한 주12가 확인되었다. 특히 제철공방지에서는 주10주11 시설이 확인되어, 이곳에서 무기나 선박 건조에 필요한 각종 공구류를 제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발포 만호성의 초축 시점을 고려해보면 이곳은 조선 전기의 관영 광업으로부터 17세기에 성행한 군수 광업과 관련된 곳으로 판단된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여수 선소와 고성 소흘비포성지가 있다.

성 내부에서 성곽이 초축된 조선 전기부터 성이 폐쇄된 조선 후기까지의 자기류와 기와류가 출토되어, 발포성이 계속 운영되었다는 것을 알 수 었다.

현재 성곽의 내부에는 민가가 들어서고, 밭을 경작하고 있어 자세한 내부 시설을 확인할 수 없다. 다만 고지도와 발굴 조사를 통해 문지와 건물지 등을 살펴볼 수 있을 뿐이다. 문지는 3곳으로 동 · 남 ·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동문지가 발포리 675번지 주변, 남문지는 발포리 562번지 주변, 서문지는 발포리 622번지 주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헌(東軒)객사는 일렬로 배치되었는데, 동헌 터는 발포리 637-45번지인 교회 뒤쪽의 빈터로 1977년 발굴조사되었다. 동헌은 정면 4칸, 측면 1칸으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확인되며, 동헌의 주13 방향은 동북-남서로 정면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객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이루어졌으며, 발포리 636번지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선소는 현재 마을 동쪽 진입로 부근 타원형의 석축이 있는 곳으로 추정되며, 규모는 최대 장축 46.8m이다. 마을 입구 바닷가에 발포역사체험관이 설립되어 발포 만호성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다.

참고문헌

원전

『鉢浦鎭鎭誌』

단행본

고흥군, 『高興 鉢浦萬戶城 地表調査報告書』(2001)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조선시대 수군진조사Ⅱ-전라좌수영』(2014)
순천대 남도문화연구소, 『임진왜란과 고흥–임란해전의 수군기지 일관4포의 역사』(2002)
(재)나라문화연구원, 『고흥 발포만호성』(고흥군 · 나라문화연구원, 2022)
최몽룡, 『고흥 발포진성 발굴조사보고서』(발포충무공유적고흥보존위원회, 1977)
최인선 외, 『고흥군의 호국유적Ⅰ-성곽』(순천대 박물관, 2001)
주석
주1

순천. 낙안. 보성. 광양. 흥양

주2

사도, 여도, 녹도, 발포, 방답

주3

조선 시대에, 각 도에 있는 수군의 수영에 속한 종사품 외직 무관(外職武官) 벼슬. 수군우후의 아래이다. 우리말샘

주5

판자 모양으로 가공되어 바닥이나 벽면에 붙이는 석재. 암석 가운데 15~38cm의 납작하고 편평한 암석을 말한다. 지붕, 바닥, 벽면이나 도로 따위에 이용된다. 우리말샘

주6

건축물을 세우기 위하여 잡은 터에 쌓은 돌. 우리말샘

주7

일정하지 아니한 모양이나 양식. 우리말샘

주8

구조물의 기초에 쓰이는 깬돌. 1개의 중량이 10~100kg로 여러 종류가 있다. 우리말샘

주9

어떤 건물이 있던 터. 우리말샘

주10

높은 온도로 광석을 녹여서 함유한 금속을 분리ㆍ추출하여 정제하는 가마. 우리말샘

주11

금속을 불에 달구어 벼림. 우리말샘

주12

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 우리말샘

주13

사방 정계에서, 좌우 축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4)
집필자
최인선(순천대학교 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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