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초명은 집(集), 자는 휘조(輝祖), 호는 지애(芝厓). 아버지는 통덕랑 정지복(鄭之復)이며, 어머니는 의성김씨(義城金氏)로 김경헌(金景瀗)의 딸이다. 이상정(李象靖)과 최흥원(崔興遠)을 사사하였다.
1796년(정조 20) 효행과 학문으로 조정에 천거되었으나 병으로 사양하였다. 이듬해에 온릉참봉(溫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얼마 안 되어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8대조 정구(鄭逑)를 추모하여 숙야재(夙夜齋)를 지어서 자질들을 가르치며 학문 연마에 몰두하였다.
이기설은 이황(李滉)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지지하였고, 예학을 연구하여 스승 이상정이 저술하다가 마치지 못한 『가례휘통(家禮彙通)』을 마무리하여 간행하였다. 저서로는 『지애문집(芝厓文集)』 7권이 있고, 편서로는 『가례휘통(家禮彙通)』 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