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인길(仁吉), 호는 항재(恒齋). 정온(鄭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윤겸(鄭允謙)이고, 아버지는 현감 정숙(鄭淑)이며, 어머니는 충의위(忠義衛) 김계훈(金季勳)의 딸이다. 김안국(金安國)의 문인이다.
1540년(중종 35) 사마양시에 모두 합격하고, 1543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이듬해 검열이 되고, 1547년(명종 2) 호조정랑·헌납 등을 거쳐 뒤에 부수찬·교리 등을 지냈다. 1552년 청백리에 녹선되었고, 공조참판이 되었다.
강원도관찰사 때는 도민들을 안무(安撫)하고, 평안도관찰사로 부임하여서는 서북지방인이 무예를 좋아하고 문교(文敎)를 싫어하는 지방이라는 형세를 감안하여 평양에 서원과 서적포를 설립하여 학문의 진흥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뒤 팔계군(八溪君)에 습봉(襲封)되었다.
1562년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하여 윤원형(尹元衡)에게 아부하여 부정행위를 자행하는 수령들을 응징하고, 내전의 힘을 빌려 발호하는 요승(妖僧)을 제거하였다. 1567년 한성부판윤으로 진향사(進香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 육조의 판서를 역임하고 우찬성으로 사직하였다.
서예에도 뛰어났으며, 저서로는 『항재집』이 있다. 원주의 칠봉서원(七峰書院)에 봉향되었다. 시호는 정헌(靖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