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대원(大源). 정흥(鄭興)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온(鄭溫)이고, 아버지는 정윤성(鄭允誠)이며, 어머니는 이호(李浩)의 딸이다. 윤원형(尹元衡)의 첩인 난정(蘭貞)의 사촌오빠이다.
1533년(중종 28) 음보(蔭補)로 검열이 되고, 1540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43년 검열로서 포쇄관(曝曬官)의 중임을 맡고 있으면서 사사로이 취처(娶妻)하였다는 이유로 대간의 논박을 받았다.
1544년 이조정랑을 거쳐 1546년(명종 1) 병조정랑으로 춘추관기주관을 겸임하여 『중종실록』편찬에 참여하였다. 그 뒤 지평·정언·검상·장령 등을 거쳐 1552년 전라도 암행어사로 나갔다.
이듬해 우부승지·부제학을 지내고, 1554년 강원도관찰사로 나가 원주가 그의 가향(家鄕)임을 빙자하여 민전(民田)을 늑탈하고 그 지역의 세염(稅鹽)을 포탈하여 축재하기도 하였다. 이어 호조참의·광주목사(廣州牧使)·병조참지를 거쳐 1557년 함경남도병마절도사로 부임하고, 1559년 충무위행상호군(忠武衛行上護軍)이 되었다.
1565년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죽은 뒤 윤원형이 축출되자 그 세력에 아부하여 탐학을 자행하였다는 탄핵을 받고 변방에 유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