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자유세계(自由世界)』에 발표되었으며, 1954년 을유문화사에서 단행본으로 간행하였다. ‘검정 넥타이’로 개제(改題)·일역(日譯)되어 『친화(親和)』지에 발표되기도 하였다. 6·25와 피난 생활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 있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살핀 작품이다.
이 소설에는 작가 조운, 문학소녀 미이, 작가이며 교사인 석이 세 사람이 등장한다. 작가 조운은 ‘독특한 철학적인 명제를 난삽한 문체로 표현하는’ 작가로서 개성이 뚜렷하다. 더욱이, 자신에 충실하고 문학에 대한 결백성을 굳게 지켜 존경을 받는다. 세속적인 것에 초연하고 세상일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동료들뿐 아니라 문학소녀들 사이에도 존경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6·25가 일어나자 조운은 문학을 버리고 사업에 손을 대어 돈을 번다. 몸이 불어나고, 생활에 여유가 있으면서 깊이 생각하는 일도 없어졌고, 술과 여자 속에 살아간다. 6·25 전 반세속적이었던 조운은 철저하게 세속적인 인물로 변신한다.
문학소녀 미이는 중역의 외동딸로 입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하나하나가 경박한 일면이 있는 아가씨이다. 문학을 하겠다고 조운을 따라다니는 미이는 6·25가 일어나 집안이 몰락하고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 성숙한 인간으로 변모하고, 인간의 소명(召命)이 무엇인가를 깨닫는다. 조운의 경제적인 도움을 거절하고 간호장교 시험을 치른다.
작가요 교사인 석이는 6·25 전에는 신문사에 근무하면서 작품을 써왔다. 6·25가 일어나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는 ‘생활을 위하여’ 교사로 취직한다. 그러나 교사로도 충실하지 못하고 작가로서도 충실하지 못하여 늘 번민 속에 있다. 그래서 석이는 “조운의 말대로 조운은 사변의 압력으로 그의 사명을 포기하였고, 사변을 통하여 미이는 용감하게 시대적 요구에 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하였다. 나는……사명을 포기하지도 못하고 그것에 충실하지도 못하고 말라가는……나도 사변이 빚어낸 한 타입이라고 할까?” 하는 생각을 품는다.
이 소설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인간이 어떻게 변모되는가를 살핀 것으로,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한 작품이다. 「여수(旅愁)」·「역(逆)의 처세철학(處世哲學)」·「제비」 등과 같이 삶의 문제를 성찰한 계열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