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길은 해방 이후 「맹아기」, 「제삼인간형」, 「북간도」 등을 저술한 소설가이다. 1932년부터 1945년까지 간도에서 소학교 교원, 간도일보·만선일보 기자를 지냈다. 1935년에 단편 「적십자병원」과 콩트 「붉은 목도리」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48년 월남하여 경향신문 문화부 차장 등을 지냈다. 장편 20여 편, 단·중편 60여 편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현대사와 망국인들의 통한을 그린 것과,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를 다룬 것이 주류를 이룬다. 또한 소설의 배경을 시간적으로는 한말부터 1970년대까지, 공간적으로는 만주 일대까지 확대시켰다.
아호는 남석(南石). 함경남도 함흥 출생. 안용호(安鎔浩)의 장남으로 태어나 함흥 · 흥남 · 간도 등지에서 성장하였다.
1926년 간도중앙학교를 졸업하고 함흥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2학년 때 맹휴사건과 관련되어 자퇴하고, 1928년 서울의 경신학교(儆新學校) 3학년에 편입하였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호응하였다가 퇴학당하였다. 이듬해 일본에 건너가 교토(京都)의 료요중학[兩洋中學]을 거쳐 1931년 3월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고등사범부 영어과에 입학하였으나 학비 관계로 중단하고 귀국하였다.
1932년부터 1945년까지 간도에서 소학교 교원, 간도일보 · 만선일보(滿鮮日報) 기자를 지냈고, 1948년 월남하여 경향신문 문화부 차장 등을 지낸 바 있다. 용산고등학교 · 서라벌예술대학 ·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기도 하였다.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중앙위원, 한국문인협회 이사를 지냈고, 제2회 아시아자유문학상(1955), 서울특별시문화상(1958), 3 · 1문화상(1973)을 수상하였다.
1935년에 단편 「적십자병원장(赤十字病院長)」과 콩트 「붉은 목도리」가 『조선문단(朝鮮文壇)』지에 당선된 것을 계기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이 후 장편 20여 편, 단 · 중편 60여 편을 남겼다.
작품의 경향은, 첫째, 망국인의 삶과 통한을 그린 것으로 「새벽」(싹트는 대지, 1940) · 「벼」(만선일보, 1940) · 「북간도(北間島)」(사상계, 1959∼1967) · 「맹아기(萌芽期)」(신태양, 1958) · 「삭발(削髮)」(사상계, 1967) · 「라자(羅子) 머자니크」(아세아, 1969) · 「망명시인(亡命詩人)」(1976) 등이 이에 속한다. 「새벽」 · 「벼」 등에서는 간도에 건너가 황무지를 개간한 농민들의 갈등과 비애를 그렸고, 「맹아기」 · 「삭발」은 일제시대 학생과 교원이 겪었던 아픔을 그린 소설이며, 「라자 머자니크」와 「망명시인」은 조국을 잃어버리고 방랑하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둘째,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를 다룬 것으로 「여수(旅愁)」(백민, 1949) · 「제비」(문예, 1952) · 「역(逆)의 처세철학(處世哲學)」(문예, 1952) · 「제삼인간형(第三人間形)」(자유세계, 1953) 등이 여기에 들어간다. 6 · 25 전후를 배경으로 지식인들의 삶을 조명하면서 어떤 것이 인간다운 삶인가를 추구한 소설들이다.
셋째, 산업사회의 문턱에서 인간이 점차 왜소하여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들로 「서장(序章)」(1961) · 「새」(1968) 등이 이에 속한다. 기능과 능률을 강조하는 시대에 인간이 어떻게 소외되어가는가를 그린 소설이다.
넷째, 이데올로기의 갈등 속에 살고 있는 한국인의 피해망상을 그린 것으로 「Iraq에서 온 불온문서(不穩文書)」(문학춘추, 1964) · 「동태찌개의 맛」(신동아, 1970) 등이 이에 속하며, 분단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인의 아픔과 갈등을 그린 소설이다.
그의 작품 세계는 소설의 배경을 시간적으로는 한말부터 1970년대까지, 공간적으로는 만주일대까지 확대시키면서 현대사와 국토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망국인들의 통한을 그린 것과,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를 다룬 것이 주류를 이룬다. 「효수(梟首)」가 중역(中譯)되었고, 「제삼인간형」이 일역(日譯)되어 각각 중국과 일본에 소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