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사척(士惕). 아버지는 병마절도사 조안국(趙安國)이며, 어머니는 생원 권세임(權世任)의 딸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제주목사를 거쳐, 1591년 강계부사로 있을 때 그곳에 유배되어 온 정철(鄭澈)을 우대하였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우도방어사가 되어 김산(金山)에서 왜적을 물리치다 부상을 입었다. 이 해 겨울 수원부사로 적에게 포위된 독산성(禿山城)의 권율(權慄)을 응원, 이듬해 도원수 권율과 함께 행주산성에서 대첩을 거둬 가선대부(嘉善大夫)에 가자되었다.
행주산성에서의 승리로 한양을 탈환할 수 있었고, 도성서도포도대장(都城西都捕盜大將)으로 임명되었다. 1593년『기효신서(紀效新書)』의 신진법(新陣法)을 명나라 장수 낙상지(駱尙志)의 소청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새로 편제된 훈련도감당상을 겸하고, 이듬해 훈련대장이 되었다.
그 뒤 동지중추부사·함경북도병사·훈련원도정·한성부판윤을 거쳐 1599년 충청병사·회령부사를 지냈으며, 1604년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에 책봉되고 풍양군(豊壤君)에 봉하여졌다.
그는 무신으로 사서(史書)를 두루 통하여 고사(古事)에 밝았고 늦게 급제하였으나 명망이 높아 사람들이 모두 대장의 재목으로 기대하였다. 시호는 장의(莊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