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배천(白川). 문하시중 배천후(門下侍中白川侯) 조진(趙珍)의 4세손으로, 할아버지는 검교시중 상서좌복야국자좨주(檢校侍中尙書左僕射國子祭酒) 조선(趙瑄)이며, 아버지는 판삼사사 문하좌찬성(判三司事門下左贊成) 조성주(趙成柱)이다.
고려 말 군졸로 출발하여 최영(崔瑩)의 휘하에서 판도판서(版圖判書)에 이르렀다. 이성계(李成桂)의 위화도회군으로 최영이 실각하자, 이성계의 휘하로 들어가 군무(軍務)를 담당하였다.
1392년(태조 1) 이성계를 추대하여 개국공신 2등에 올라, 그 해 8월 보조공신(補祚功臣)의 호를 받고 동지중추원사·의흥친군위동지절제사(義興親軍衛同知節制使)가 되었으며, 은천군(銀川君)에 봉하여졌다. 같은 해 11월 의흥친군위 상진무(上鎭撫)가 되어 궁궐을 출입하면서 위엄을 떨쳤다.
그러나 무식하고 요령이 없어 조사(朝士)들을 업신여겨 평판이 좋지 않았다. 1395년 1월 등창으로 병이 위독해지자 왕이 중들을 궁중에 불러들여 기도하게 하였으며, 그가 죽자 왕이 매우 슬퍼하여 조회를 중지시키고 상의중추원사(商議中樞院事) 이천우(李天佑)를 보내 치제(致祭)하였다. 문하시랑찬성사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위(忠魏)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