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하나가 겨우 앉을 만한 크기인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중국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이 백제의 도성을 함락시킨 뒤, 어느날 대왕포(大王浦) 하류에 갑자기 태풍이 불어 바위나루[窺巖津]를 지나 낙화암(落花巖)까지 잇대어 있던 수백 척의 당나라 병선이 순식간에 뒤엎어지고 말았다. 소정방은 이 돌연한 괴변이 왜 일어났는지를 일관(日官)에게 물었다.
일관이 말하기를, 이것은 백제를 지켜온 강룡(江龍)이 화를 낸 것이라고 하였다. 강룡을 퇴치할 방법을 소정방이 다시 물으니 일관은 용이 좋아하는 백마를 미끼로 하여 낚는 것이 좋다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소정방은 쇠를 두들겨 낚시를 만들고 굵은 철사를 낚싯줄로 하여 백마를 미끼로 강 가운데 바위 위에 앉아 용을 낚기로 하였다. 그러자 용은 미끼인 백마를 삼켜서 잡히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일로 하여 뒷날 사람들이 소정방이 용을 낚았다고 하는 이 바위를 조룡대(釣龍臺)라 하고, 백마를 미끼로 용을 낚은 강이라 하여 금강(錦江)의 줄기인 부여 부근 일대의 강을 백마강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부여현(扶餘縣) 고적조(古蹟條)에 나온다. 그런데 ‘물고기’를 한자로 적을 때 ‘어룡(魚龍)’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소정방이 어룡을 낚은 것을 뒷날 잘못 전하여 용을 낚았다고 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 남부여 백제조에도 이에 대한 기록이 있다. 즉, 사비하(泗沘河)가에 한 바위가 있는데, 일찍이 소정방이 어룡을 낚기 위해 꿇어앉았던 자국이 바위 위에 있으므로 용암(龍巖)이라 한다는 것이었다. 이로 미루어 어느 시기부터, 어떤 연유에서였는지 모두 확실하지는 않으나 어룡이 용으로 바뀌어 전해져 오게 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