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 ()

자연지리
지명
충청남도 부여 부근을 흐르는 금강의 명칭.
이칭
이칭
백강, 사하(泗河), 백촌강(白村江)
지명/자연지명
길이
약 16㎞
소재지
충청남도 부여군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백마강은 충청남도 부여 부근을 흐르는 금강의 명칭이다. 백마강은 부여읍 정동리 범바위[虎岩]에서부터 현북리 파진산(186m) 모퉁이까지 약 16㎞ 구간의 금강변이다. 범바위는 조차가 큰 서해 바다의 밀물이 최대로 영향을 끼치는 감조 구간에 해당했다. 백제 무령왕 대의 기록에 ‘백강’으로 표기했던 사실이 있고, 역사적으로 말(馬)을 ‘크다’는 뜻으로 써온 것을 감안할 때, 백마강은 ‘백제에서 가장 큰 강’이기에 붙인 이름으로 보인다.

정의
충청남도 부여 부근을 흐르는 금강의 명칭.
개설

일반적으로 부여읍(扶餘邑) 정동리 범바위[虎岩]에서부터 현북리 파진산(186m) 모퉁이까지 약 16㎞ 구간의 금강 변을 백마강이라 한다. 특히 범바위는 주1가 큰 서해 바다의 밀물이 최대로 영향을 끼치는 감조 주2에 해당했으며, 2011년에 백제보가 설치되었다.

금강은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장수읍 신무산(神舞山, 897m)에서 발원하여 서해로 흐르다가 공주에 이르러 웅진(熊津) 또는 금강(곰강)이 되고 유구천(維鳩川)을 합하여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부여군에 이르러 고성진(古省津) 또는 백마강이 된다. 금강은 백마강을 지나 논산천(論山川)을 합하고 주3을 거쳐 충청남도와 전북특별자치도의 경계를 이루며 바다로 흘러간다.

명칭 유래

소정방이 백마의 머리를 미끼로 용을 낚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바위를 조룡대(釣龍台)라 부르고, 이때 강의 이름도 사하(泗河)에서 백마강(白馬江)으로 바꾸었다는 유래가 전한다. 그러나 백제 말기보다 160여 년 앞선 무령왕 대의 기록에 이미 ‘白江(백강)’으로 표기했던 사실이 있고, 역사적으로 말(馬)을 '크다'는 뜻으로 써온 것을 감안할 때 백마강은 ‘백제에서 가장 큰 강’이기에 붙인 이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자연환경

우리나라 하천은 대부분 주4. 그러나 금강의 백마강 구간은 대체로 곧게 흐르는 것이 특징이다. 백마강의 범위는 명확하지 않으나, 대체로 공주를 지나 청양군 청남면, 부여군 부여읍과 규암면에 속한 구간을 말한다. 이 범위에서 백마강은 서남류하는데 북동으로부터 금강이 흘러들어 부여읍 서쪽에서 각각 지천(枝川), 은산천(恩山川), 구룡천(九龍川), 금천(金川)을 차례대로 받아들인다. 백마강으로 이들 하천이 흘러드는 합류부는 모두 주5으로 이루어졌고 그 가운데서도 금천 유역은 금강의 자연 주6 또는 배후 주7에 해당하는 충적평야이다. 이에 반하여 백마강 동쪽에 해당하는 부여읍과 석성면 구간은 주장산(123m) · 부소산(96m) · 금성산(124m) · 필서봉(118m) · 용머리산(171m) 등 해발 1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 사이에 소하천이 흐를 뿐이다.

백마강의 지질은 주8주9주10을 기반암으로 한다. 이를 토대로 해서 주11 주12의 퇴적층인 남포층, 이들을 모두 주13 화강암류, 주14의 퇴적층인 공주층군, 주15 제4기 충적층으로 이루어졌다.

백마강 일대는 차령산맥주16이 침식으로 해체되는 과정에 놓여 있어 대체로 주17 산지를 이루고 있다. 백마강은 북동 방향에서 흘러들어와 부소산(扶蘇山)을 크게 감돌아 남동 방향으로 흘러 나가는 형국이다. 이때 부소산을 침식하여 이른바 '낙화암'이라 불리는 공격 사면(攻擊斜面)의 주18를 발달시키고 그 반대편에 퇴적 사면(堆積斜面)을 만들어놓았다.

백마강 주19에 인구 약 1만 9천 7백여 명이 사는 부여읍이 위치한다. 부여읍은 백마강 주20주21의 공격 사면에 대한 퇴적사면이어서 범람원이 발달하였고 주22나 배후 습지(背後濕地)도 남아 있다. 금강에 의하여 형성된 범람원은 하상비고가 10m 이하로서 자연 제방과 배후 습지로 뚜렷이 구분된다. 자연 제방은 고도가 높고 배수가 양호하므로 일찍부터 취락이 들어서는 한편 농경지로도 이용되었다. 자연 제방의 토양은 주23 · 주24 · 점토가 비슷한 비율로 섞인 주25이다. 반면에 집중 호우 때 상습적으로 침수되는 배후 습지는 농경지로 개발되기 이전에는 배수가 불량하여 수초(水草)가 서식하는 ‘자연 습지’로 남아 있었다. 이러한 습지는 경지 정리 이후 대부분 사라졌다. 배후 습지의 토양은 대개 점토로 이루어진 식토이고, 그 밑에 주26이 매장되어 있기도 하다.

범람원의 충적층을 시추하여 상부층, 중부층, 하부층으로 구분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상부층은 주로 사층, 사질 실트층, 사질 점토층 등의 무기질층으로서 금강 및 그 지류인 왕포천의 하천 종단면이 평형 상태에 도달한 이후에 퇴적된 현생 퇴적층이다. 중부층은 주로 실트 또는 점토 계통의 무기질층으로서 주27 해면 상승과 더불어 퇴적된 주28 퇴적물층이다. 이 층에는 배후 습지 기원의 유기물층(또는 토탄층)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하부층은 주29 내지 주30으로서 금강의 지곡에서 최종빙기 주31의 수량이 부족한 환경하에 자갈의 이동에 의해 곡저에 공급된 기저역층(基底礫層)의 성격이 강한 고 선상지성 퇴적물층이다.

백마강의 기온 분포는 평균 11.8℃이며, 최저 ­2.5℃(1월), 최고 25.3℃(8월) 정도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1,311㎜이며 강수량의 60% 가량이 여름철인 6∼9월 사이에 집중되며 그 중 7월 강수량이 약 30%를 차지한다.

형성 및 변천

백마강 양안은 토사가 퇴적된 평야가 비교적 넓게 분포하여 주요한 곡창으로서 백제 중흥의 웅지를 펴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백마강 일대는 538년(성왕 16)에 국도를 웅진에서 사비성(泗沘城)으로 옮겨 660년(의자왕 20) 멸망할 때까지 백제의 심장부였다.

백마강 남안의 부소산에는 부소산성(扶蘇山城) · 군창지(軍倉址) · 고란사(皐蘭寺)등의 사적이 있으며 동쪽 끝 약 100m 높이의 단애가 백제가 멸망할 때 삼천궁녀가 강물로 몸을 던졌다는 전설의 낙화암(落花巖)이다. 이 지점이 바로 백마강의 공격 사면 가운데 하나이다. 663년(문무왕 3)에 부흥을 꾀하는 백제군과 일본 수군(水軍)이 나당연합군과 격전을 치른 백촌강(白村江)의 싸움터도 여기이다.

현황

규암나루는 백마강의 주요 나루터였으나 백제대교의 건설로 그 기능이 상실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한국지명요람(韓國地名要覽)』 (건설부국립지리원, 1982)
『한국지지 지방편-강원, 충북, 충남』 Ⅱ (건설부국립지리원, 1984)
『부여통계연보』 (부여군, 2007)
『백마강』 상 (부여군, 2008)
『제5차 전국자연환경조사』 (국립생태원, 2020)

인터넷 자료

국가통계포털(http://www.kosis.kr)
대한민국구석구석(https://korean.visitkorea.or.kr/main/main.do)
하천관리지리정보웹시스템(http://www.river.go.kr)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https://buyeo.grandculture.net/buyeo)

기타 자료

「1:50,000 지형도」 (국토지리정보원, 2021)
주석
주1

밀물과 썰물 때의 수위(水位)의 차. 우리말샘

주2

밀물과 썰물의 영향이 미치는 강(江)의 구역. 우리말샘

주3

충청남도 논산시에 있는 읍. 내포평야의 중심지로, 금강의 하류에 있으며 호남선의 중요한 철도역이 위치한다. 농산물의 집산지이며, 상공업ㆍ어업이 활발하다. 한때는 대구, 평양과 함께 우리나라의 3대 시장으로 유명하였다. 우리말샘

주4

물이 굽이쳐 흘러가다. 우리말샘

주5

비교적 최근에 하천의 활동에 의하여 자갈, 모래, 진흙 따위가 쌓여 이루어진, 아직 굳지 아니한 퇴적층. 우리말샘

주6

하천의 양쪽에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제방. 홍수가 일어날 때나 하천의 물이 범람할 때, 하천의 중심부보다도 가장자리 쪽의 유속(流速)이 약하므로 모래와 자갈이 가장자리에 쌓이면서 둑을 이룬다. 우리말샘

주7

범람원이나 삼각주에 발달한 자연 제방의 뒤쪽에 생긴 습지. 홍수로 넘쳐흐른 물이 낮은 땅에 괴어 늪이나 습지를 형성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말샘

주8

캄브리아기 이전의 지질 시대. 약 46억 년 전부터 약 5억 7000만 년 전까지의 시대를 말하며, 시생대와 원생대로 나눈다. 우리말샘

주9

수성암 또는 화성암이 땅 밑 깊은 곳에서 온도, 압력 따위의 영향이나 화학적 작용을 받아 변질하여 이루어진 암석. 우리말샘

주10

반드시 장석을 포함하고, 석영ㆍ운모ㆍ각섬석 따위로 이루어진 변성암. 수성암과 화성암의 두 종이 있는데, 운모가 조각 모양으로 섞이고 다른 광물도 줄무늬를 이룬 것이 화강암과 다르다. 우리말샘

주11

지질 시대의 구분에서 고생대와 신생대 사이의 시기. 지금부터 약 2억 4500만 년 전부터 약 6,500만 년 전까지이다. 겉씨식물이 번성하였고, 공룡과 같은 거대한 파충류를 비롯하여 양서류ㆍ암모나이트 따위가 번성하였다. 트라이아스기, 쥐라기, 백악기로 다시 나뉜다. 우리말샘

주12

중생대를 다시 셋으로 나누었을 때 가운데에 해당하는 지질 시대. 약 1억 8000만 년 전부터 약 1억 3500만 년 전까지의 약 4,500만 년간의 시기이다. 양치식물, 은행나무, 소철류, 파충류, 암모나이트, 공룡 따위가 번식하였으며, 조류의 선조인 시조새도 나타났다. 우리말샘

주13

마그마가 주변의 암석을 뚫고 들어가다. 우리말샘

주14

중생대를 3기로 나누었을 때 마지막 지질 시대. 약 1억 4,500만 년 전부터 6,500만 년 전까지의 시대를 말한다. 우리말샘

주15

중생대에 이어지는 가장 새로운 지질 시대. 약 6,500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시대를 이르며, 그 말기에 인류가 나타났다. 우리말샘

주16

땅속 지층이 이어진 맥락. 우리말샘

주17

땅이 약간 언덕진 특성. 우리말샘

주18

하천의 침식 작용으로 생긴 언덕. 우리말샘

주19

강이나 바다 따위의 동쪽 기슭. 또는 대륙이나 반도 따위의 동쪽 기슭. 우리말샘

주20

강이나 바다 따위의 서쪽 기슭. 또는 대륙이나 반도 따위의 서쪽 기슭. 우리말샘

주21

주로 석영의 입자만으로 된 매우 단단한 알갱이 구조의 암석. 사암(沙巖) 또는 규질암이 변성 작용을 받아 형성된 것으로, 공극(孔隙)이 없고 깨진 표면이 평탄하다. 우리말샘

주22

하천의 중간에 유속이 느려지거나 흐르는 방향이 바뀌면서 퇴적물이 쌓여 형성되는 섬. 주로 큰 강의 하구에 나타난다. 우리말샘

주23

가늘고 고운 모래. 우리말샘

주24

모래와 찰흙의 중간 굵기인 흙. 우리말샘

주25

점토가 25~37.5% 함유된 흙. 배수(排水), 보수력, 통기성이 적당하여 모든 작물 재배에 알맞다. 우리말샘

주26

땅속에 묻힌 시간이 오래되지 아니하여 완전히 탄화하지 못한 석탄. 이끼나 벼 따위의 식물이 습한 땅에 쌓이어 분해된 것으로, 광택이 없고 검은 갈색을 띠며 해면 모양이나 실 모양 또는 흙덩이 모양을 하고 있다. 발열량이 적으며, 비료나 연탄의 원료로 쓰인다. 우리말샘

주27

신생대 제사기 플라이스토세의 빙하 시대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는 지질 시대. 약 1만 년 전 이후의 시기로, 한랭에서 온난으로 기후가 변하고 생물군은 현재와 같은 양상을 띠게 되었다. 우리말샘

주28

매우 작은 알갱이로 이루어진 물질. 우리말샘

주29

자갈로 이루어진 지층. 우리말샘

주30

자갈이 많은 지층. 우리말샘

주31

가장 왕성하고 한창인 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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