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

자연지리
지명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과 예산군 덕산면에 걸쳐 있는 높이 678m의 산.
이칭
이칭
상왕산(象王山)
지명/자연지명
높이
678m
소재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예산군 덕산면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가야산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과 예산군 덕산면에 걸쳐 있는 높이 678m의 산이다. 충청남도 서북부에서 남 · 북 방향으로 형성된 소위 ‘가야산맥’에 속하며 많은 문화 유적을 간직한 명산이다. 주봉인 가야봉을 중심으로 원효봉, 석문봉, 옥양봉 등이 주요 봉우리이다.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과 예산군 덕산면에 걸쳐 있는 높이 678m의 산.
개설

높이 678m. 가야산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과 예산군 덕산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능선은 북쪽으로 서산시 운산면과 예산군 봉산면까지 뻗어 있다. 남쪽 가장자리를 따라서 45번 국도가 지나간다. 충청남도 서북부에서 남 · 북 방향으로 형성된 소위 ‘가야산맥’에 속하며 많은 문화 유적을 간직한 명산이다. 주봉인 가야봉을 중심으로 원효봉(元曉峰, 605m), 석문봉(石門峰, 657m), 옥양봉(玉洋峰, 621m) 등이 주요 봉우리이다. 가야봉의 정상에 한국방송공사의 원효봉 중계소와 대전방송의 서산TV 중계소가 자리한다.

신라 때 가야산사를 짓고 주1를 지냈으며 조선시대까지도 덕산현감이 봄, 가을로 고을 관원을 시켜 제를 올렸다. 능선을 중심으로 피는 진달래와 억새풀 등이 산세와 어우러져 경치가 수려하다. 덕숭산(德崇山, 주2과 함께 1973년 3월에 주3으로 지정되었다.

명칭 유래

백제 때 상왕산(象王山)이라 불렀다. 삼국 통일 후 덕산면 상가리에 가야사를 세우고 나서 가야산이라 바꿔 불렀다.

자연환경

가야산은 북쪽으로 일락산(日樂山, 521m) · 상왕산(象王山, 310m) · 아미산(峨嵋山, 351m), 남쪽으로 삼준산(三峻山, 489m) · 계봉산(鷄鳳山, 202m)과 이어진다. 주4으로 구성된 가야산맥은 충청남도의 서북부를 남북으로 달리면서 내포(內浦)와 태안반도(泰安半島)의 경계를 이룬다. 동쪽 사면을 흘러내리는 물길은 옥계저수지, 봉림저수지 등을 거치고 삽교천(揷橋川)을 통하여 아산호로 배수되고 서쪽 사면의 물길은 산수저수지, 황락저수지, 신창저수지 등을 지나 천수만(淺水灣)으로 흘러간다. 특이한 물길은 석문봉 북쪽 기슭에서 발원한 총 길이 29km의 역천(驛川)이다. 역천은 가야산맥의 북쪽 자락에 조성된 고풍저수지를 감입 주5 하며 당진 시가지 서쪽을 지나 석문호로 유입하기 직전에는 간척지를 자유 주6 한다.

가야산 정상의 북측은 2∼3m 크기의 토르(tor)와 3∼4m 크기의 주7가 발달하였고 정상 남측의 급사면에 35m 규모의 암벽(岩壁)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에도 2m 내외의 토르가 집단적으로 나타난다.

가야산에서 석문봉에 이르는 능선은 대부분 토양층으로 덮여 있지만 풍화와 차별 주8에 비교적 저항력이 강한 암석이 노출되어 있기도 하다. 부분적으로 20m 정도의 높이와 폭으로 된 암석 단애가 나타나며 단애의 상층부에 절리 형태에 따라 각진 모습의 토르가 드물게 발달하였다. 석문봉은 가야산의 봉우리 중에서 바위가 가장 많이 분포하는 곳이다. 가야봉 방향으로 암릉을, 서남쪽으로 주9를 형성하고 있다.

편서풍이 서해 바다를 지나 가야산의 여러 봉우리에 부딪치면서 형성된 상승 기류가 자주 지형운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그 운해 속에 뒤덮인 설경은 가야산 경관 중 최고로 손꼽힌다.

정상과 능선에서의 조망이 시원하다. 서해 쪽으로 서산과 태안, 천수만, 서해, 내륙 쪽으로 예당평야가 넓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현황

상왕산 서남쪽 계곡에 백제 사찰인 보원사(普願寺) 초석 등 유적이 남아 있었으나 1970년대 이후 추진된 산지 개발로 인하여 목장으로 바뀌었다.

가야산과 서원산(書院山, 473m) 사이인 덕산면 상가리에는 조선조 주10의 부친인 남연군(南延君)의 묘(충청남도 기념물, 1989년 지정)가 있다. 이곳을 1868년 5월 독일 상인 주11아산만을 거쳐 구만포(九萬浦)에 상륙하여 도굴하려 시도한 일이 있었다. 경기도 광주에서 충청도 덕산까지 남연군의 운구 이장에 사용했던 상여를 덕산면 광천리를 지나는 45번 국도 옆 보호각 내부에 보관 중이다. 동쪽으로 뻗어 나간 능선 자락에 덕산온천윤봉길 의사 유적(사적 229호)이 위치한다.

가야산에는 백제 마애석불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서산 마애삼존불상(국보, 1989년 주12을 비롯한 주13, 개심사, 일락사, 해미읍성(사적 주14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국보 1점, 보물 6점, 기타 국가유산 4점 등을 비롯한 각종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어 내포 문화권의 핵심을 이룬다. 유서 깊은 문화 유적과 오염되지 않은 자연 경관을 보러 매년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장항선서해안고속도로, 당진영덕고속도로 등이 가까이 지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서해안고속도로의 해미I.C에서 빠져나와 45번 국도를 이용하면 접근이 용이하다.

참고문헌

단행본

『한국지명총람』 (한글학회, 1974)
『한국지명요람(韓國地名要覽)』 (건설부 국립지리원, 1982)
『예산·서산·홍성의 자연환경』가야산·일월산·수덕산·청룡산·봉화산 (환경부, 1998)
『한국(韓國)의 산지(山誌)』 (건설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 2007)

인터넷 자료

서산시청(http://seosan.go.kr/)
예산군청(http://www.yesan.go.kr/)

기타 자료

「1:50,000 지형도」 (국토지리정보원, 2021)
대한민국 구석구석
전국자연환경조사 보고서 (2020)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예산군, 2020)
주석
주1

통일 신라ㆍ고려ㆍ조선 시대에 나라에서 지내던, 대사(大祀) 다음가는 제사. 대사보다 의식을 간단히 하여 지냈다. 우리말샘

주2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산. 예산 수덕사 대웅전, 수덕사 노사나불 괘불탱 등의 문화재가 있는 수덕사가 있다. 높이는 495.2미터. 우리말샘

주3

충청남도 예산군과 서산시에 걸쳐 있는 도립 공원. 1973년에 도립 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덕숭산 지구와 가야산 지구로 나뉜다. 수덕사, 보덕사, 옥계 저수지, 옥양 폭포 등의 명승지가 있다. 총면적은 19.859㎢. 우리말샘

주4

반드시 장석을 포함하고, 석영ㆍ운모ㆍ각섬석 따위로 이루어진 변성암. 수성암과 화성암의 두 종이 있는데, 운모가 조각 모양으로 섞이고 다른 광물도 줄무늬를 이룬 것이 화강암과 다르다. 우리말샘

주5

산지나 구릉지에서 구불구불한 골짜기 안을 따라 흐르는 하천. 우리말샘

주6

평탄한 지역을 흐르는 구불구불한 하천. 물이 흐르는 속도가 느려 조그만 장애물에 물이 흐르는 길이 쉽게 굽어져서 형성된다. 우리말샘

주7

지표에 드러난 겉넓이가 100㎢ 이하인 심성암체. 주로 화강암이다. 우리말샘

주8

지역에 따라 지표면의 단단한 정도가 달라서 서로 다르게 침식하는 일. 우리말샘

주9

깎아 세운 듯한 낭떠러지. 우리말샘

주10

조선 고종 때의 정치가(1820~1898). 이름은 이하응(李昰應). 호는 석파(石坡). 고종의 아버지로, 아들이 12세에 왕위에 오르자 섭정하여, 서원을 철폐하고 외척인 안동 김씨의 세력을 눌러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는 따위의 내정 개혁을 단행하였다. 한편으로는 경복궁의 중건, 천주교에 대한 탄압, 통상 수교의 거부 정책을 고수하여 사회ㆍ경제적인 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우리말샘

주11

에른스트 야코프 오페르트, 독일의 항해가ㆍ상인(1832~?). 1868년에 아산만에 상륙하여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南延君)의 능묘 도굴 사건을 일으켜 대원군의 통상 수교의 거부를 더욱 강경하게 하였다. 저서에 ≪금단의 나라, 조선에의 여행≫이 있다. 우리말샘

주12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마애 불상. 백제 말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화강암에 조각한 불상으로, 본존 여래 입상을 중심으로 하여 왼쪽에 반가 사유형(半跏思惟形)의 보살 좌상이, 오른쪽에 보살 입상이 안치되어 있다. 국보 정식 명칭은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 삼존상’이다. 우리말샘

주13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부터 고려 전기 사이의 절터. 보원사지 석조ㆍ당간 지주ㆍ오층 석탑ㆍ법인 국사 보승탑 등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어, 불교사 연구에 중요한 유적이다. 우리나라 사적이다. 우리말샘

주14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있는 옛 성. 조선 태종 17년(1417)에서 세종 3년(1421) 사이에 지어졌으며,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사적 정식 명칭은 ‘서산 해미 읍성’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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