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1년(충렬왕 17) 합단적(哈丹賊 : 원나라의 반란군)이 철령(鐵嶺)을 넘어 원주에 침입하여 원주성이 거의 함락 직전에 놓이게 되자 성안의 사람들이 심히 동요하였다.
당시 흥원창판관(興元倉判官)으로서 성밖으로 나가 적을 맞아 싸우자 진사 원충갑(元冲甲)도 돌연 동쪽 봉우리로 올라가 적을 격파하였다. 이때부터 합단적은 점차 대오가 혼란해지기 시작하였다.
이에 별장 강백송(康伯松)과 국학 양정재(國學養正齋)의 유생 안수정(安守貞)이 또한 합세하여 공격하였다. 이때 북채를 잡고 북을 울리다가 오른쪽 팔에 화살이 관통하였으나 개의치 않고 여전히 북을 쳐서 사기를 돋우었다.
이에 고을의 군병이 협력하여 공격하니 합단적은 참패를 당하고 퇴각하였으며, 이때부터 고려 군민은 합단적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