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관보(觀甫), 호는 계음(溪陰). 담양 출생.
1624년(인조 2)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627년 참봉에 이어 의금부도사에 제수되었다. 그 뒤 사헌부와 사간원 등의 관직을 거쳐 의흥현감으로 나갔을 때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김장생(金長生)의 격문에 응하여 의병을 모집하고 병마와 군량미를 조달하는 등의 공을 세웠다.
이황(李滉)·이이(李珥) 등의 성학(聖學)을 연구하여 후진에게 강설하였으며, 『근사록』과 성리설 등을 연구함과 동시에 언행의 일치에 역점을 두었다. 1678년(숙종 4) 소무영사이공신(昭武寧社二功臣) 1등이 되었다. 저서로는 『계음집(溪陰集)』 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