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라는 동정(東征), 즉 일본정벌에 필요한 군량미를 확보하기 위하여 1271년(원종 12)봉주(鳳州 : 황해도 봉산)에 둔전경략사(屯田經略司)를 설치하고 봉주·황주를 비롯한 여러 곳의 둔전을 관장하게 하였는데, 이 둔전의 경작을 위하여 파견된 군대가 바로 종전군이다.
당시 원나라가 고려에 보낸 종전군은 약 6,000명 정도였는데, 고려는 이들의 식량은 물론 둔전 경작에 필요한 농우(農牛)와 농기·종자·말먹이 등을 공급하여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었다.
이를 위하여 고려는 백관(百官)을 비롯한 모든 백성으로부터 과렴(科斂)을 징수하여야 하였고, 이로 인하여 백성의 생활은 극히 곤궁하게 되었다. 특히, 거처가 준비되지 않은 경우 이들 종전군들은 민가에서 겨울을 나기도 하였는데, 이에 따른 민폐 또한 적지 않았다.
한편, 둔전경략사가 있던 봉주는 개경(開京)으로부터 매우 먼 길이었으므로 군량미 수송에도 큰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고려는 봉주의 둔전을 개경 근처로 옮기도록 요청하였고, 원나라는 그 해 말에서 이듬해 초에 걸쳐 둔전과 종전군을 염주(鹽州)와 배주(白州)로 이전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주둔에 따른 민폐와 이들에게 물품을 제공해야 할 부담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에 따라 고려는 이들의 철수를 끈질기게 교섭, 요구하였고, 제1차 일본정벌이 실패로 끝난 뒤인 1278년(충렬왕 4) 왕의 요청으로 마침내 철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