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에 걸친 요의 침입 이후 양국간에 평화가 성립되고 다양한 사행을 교류하게 되면서 고려는 요의 동경유수(東京留守)에게도 사신을 파견하였는데, 이를 지례사라 하였다.
요의 조정에 보내는 것이 아니어서 격이 낮았으므로 보통 7품관인 각문지후(閣門祗候)가 정사(正使)를 맡았으나, 이 또한 사행인 만큼 부사(副使)는 물론 서장관(書狀官)도 있었다. 한편, 지례사의 파견에 대한 답변으로 요의 동경유수는 즉시 회사지례사(回謝持禮使) 내지 회례사(回禮使)로 불리는 사신을 보내 왔다.
이러한 지례사 및 회례사의 교류는 요를 대신하여 금이 들어 선 이후에도 계속되었다가 금이 멸망하면서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