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이전에는 진척위전(津尺位田)이라고 하였다. 진부에게 지급했다고는 하나, 진부 개인에게 나누어준 것이 아니라 소속 진부 전체를 대상으로 하여 진(津 : 도라고도 함)에 분급한 것이다.
고려시대에도 진도선(津渡船)의 운행을 담당하던 진척의 생계 유지를 위해 전국의 각 진에 소정의 위전을 지급했으나 그 규모는 알 수 없다. 진척에 대한 이러한 위전 지급의 원칙은 고려 말의 과전법에서도 그대로 견지되었다. 그리하여 진의 크기, 즉 배속된 진척의 수에 따라 최고 33결(結)까지 지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조선시대인 1445년(세종 27)에는 전국의 진을 특대도·대도·중도·소도의 4등급으로 구분하였다. 그리하여 특대도에는 최하 11결에서 최고 20결, 대·중·소도에는 각각 10·3·1결씩의 토지를 분급하도록 조정하였다.
이후 『경국대전』의 편찬과 함께, 10인의 진부가 있었던 대도에는 10결 50부(負), 6인의 중도에는 7결, 4인의 소도에는 3결 50부의 토지를 진부전이라는 이름으로 지급하도록 재조정하였다.
그런데 당시 특대도에는 대도의 2배인 20인의 진부가 소속되어 있었으므로, 진부전 역시 2배에 해당하는 21결이 분급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진부 1인당 약 1결씩을 지급했던 것으로 보이며, 진부전의 전국적인 규모는 대략 200결 내외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후기에 이르러서는 약 100결 내외로 감축되었다.
이와 같은 진부전은 주로 진 근처에 있는 황무지나 속공(屬公) 토지 및 절호전(絶戶田) 등의 국·공유지로 지급되었다. 그리고 진부에 의해 경작되는 이른바 ‘자경무세(自耕無稅)’의 공전(公田)이었다. 한편, 조선시대의 진에는 이러한 진부전과는 별도로 진의 운영 경비를 조달하기 위한 재원으로서 8결의 도전(渡田)이 분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