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부안 출생으로 전주에서 전주공립공업전수학교(당시는 補習學校) 건축과를 졸업하고, 1934년경 서울에 올라와서는 경성소화공과학교(京城昭和工科學校) 건축과에 입학하였다. 그의 졸업설계작품(집합주택)은 『조선과 건축(朝鮮と建築)』 잡지에 게재되기도 하였다.
일본으로 건너가 다나베(田邊平學)의 연구실인 동경공업대학 건축과에서 건축수업을 계속하였다(1936). 이어 1940년까지 일본건축계의 원로 야마시다(山下壽郎)의 문하에 들어가 신건축을 연수하였다. 1940년 귀국하여, 광복 전 우리 근대건축교육에 중요한 일익을 담당함으로써 한국 사학(私學) 건축과의 기틀을 잡았다. 1945년 광복 이후 혼란의 와중에 건설업계에 투신하여 동흥공무소(東興工務所)를 서울 종로에 세우고, 건설업계의 발전에 공헌하였다. 1952년부터는 차경순건축설계사무소를 서울 종로2가한청(韓靑)빌딩에 신설하고, 6·25사변으로 파괴된 전재복구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의 대표작은 중앙대학교 약학대학(1953) · 도서관(1956), 대한극장(1956), 반도조선아케이드(1964∼1969), 여의도순복음교회(1969)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