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상으로는 고려 공양왕 때에 처음 나타나는데, 정원 4인이 모두 대언(代言) 즉 승지였다. 조선 태조 때에는 5인이었다가, 태종 때 승지가 6인으로 늘면서 참찬관도 6인이 되었다.
성종 때 홍문관을 설치한 뒤 그 부제학이 역시 정3품으로 참찬관을 겸하게 되어, 정원 7인으로 『경국대전』에 법제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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