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성(晟). 자는 광기(廣器). 세조의 제2서자로, 어머니는 근빈박씨(謹嬪朴氏)이며, 첫째 부인은 증찬성(贈贊成) 노호신(盧好愼)의 딸이며, 둘째 부인은 증찬성 익(益)의 딸이다.
1467년(세조 13)창원군에 봉하여졌으며, 1471년(성종 2) 덕종의 맏아들 월산군(月山君)과 함께 고례(古例)에 따라 태안군의 주요한 자재(資財)를 지급받았다. 다음해에 맏형인 덕원군(德源君)과 함께 양인 방호련(方好蓮)의 교유(敎誘)를 받아 불사(佛事)를 행함으로써 종부시의 국문을 받기도 하였다.
1477년에는 온양에 목욕하러 갔다가 공주 등지를 돌아다니며 수령들을 능욕하고 역마(驛馬)를 함부로 타고 다니는 등 많은 폐단을 일으켜, 종부시의 국문을 당하고 구사(丘史: 종친 및 공신에게 驅從으로 하사하는 관노비)를 모두 빼앗겼다.
이듬해에는 노(奴)를 살해하였다는 죄로 다시 국문을 당하였다. 어려서부터 방탕(放蕩)하였으며, 궁중의 예법을 따르지 않고 재상들을 자주 능욕하였다.
정희왕후(貞熹王后: 세조(世祖)의 비)가 이를 책망하였으나 뉘우치지 못하고 노를 살해하는 등 나라의 법을 어김이 많았다. 아들이 없어 그의 형인 덕원군의 아들 예(濊)로써 양자를 삼았다. 시호는 여도(戾悼)이다.